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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 Jul 31. 2020

나 혼자 잘 먹겠습니다

혼밥에 들이는 정성

언제부터 스스로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는 시골로 가시고, 동생은 기숙사로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데다 엄마는 매일 출근을 하셨으므로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강아지 몽구와 단 둘이 있었다. 몽구와 겸상을 하기엔 우리가 먹는 게 너무도 다르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챙겼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생각해서 아침에 이런저런 국이나 밑반찬을 해 두고 나가셨다. 문제는 내가 입이 상당히 짧고 까탈스럽다는 거였다. 아침에 먹은 국을 점심에 또 먹기가 싫었고, 어제 먹은 반찬을 오늘 또 먹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나 하나를 위해서 엄마가 국 세 가지를 포함한 12첩 반상을 매일매일 새로 차리실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무슨 불효녀란 말인가. K-장녀 유교 걸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오직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앗, 모순이군.


누군가 내게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가 무엇이냐 물어올 , 나는 한참을 고민한다. 재수 없게 들릴지는 몰라도  자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제일 자주 내놓는 답은 파스타다. 파스타는  종류가 몹시 다채롭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자주  먹는다. 오일 소스부터 토마토소스까지 면을 제외한 모든 것을 직접 만든다. 가끔은 덮밥이라 대답할 때도 있다. 일이 바빠 제대로 밥을 먹는  귀찮을 때의 대답이다. 숟가락 하나만 써서 먹을  있는 간단한 오야코동이나 버섯 덮밥 같은 것들좋아한다. 먹는 빈도에 상관없이  기분에 따라 대답할 때는, 역시 스튜다. 뵈프 부르기뇽부터 일본식 카레까지 재료 손질에 공을 들이고 오래도록 잔잔히 끓이는 요리들. 품이 많이 들어 자주  먹지는 않지만   하면 며칠간  식사 때마다 행복해질  있다.


항상 조리 시간이 짧은 요리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인스턴트를 좋아했던 적이 있기는 했나? 파스타 조리법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인스턴트 소스를 쓰던 시절에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라면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굳이 끓여먹는다면 이것저것을 첨가해 원래 모양에서는 한참 멀어진 상태로 만들어 먹었다. 귀찮아서 조리대 앞에 서기도 싫은 날엔 라면 앞을 한참 동안 서성거리다 결국 차라리 굶는 쪽을 택했다. 지금도 종종 그렇다. 라면을 사랑하는 J 덕에 우리 집 찬장에는 온갖 라면들이 종류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지만, 내가 그것들에 손을 대는 일은 드물다. J가 일 때문에 바쁘면 그 라면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인스턴트가 성의 없다는  아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요새는 간편식도 건강하고 맛있게 나오는  같더라. 인스턴트 또한 웰빙을 넘어 비건으로 가는 시대의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라면이 소울 푸드일 수도 있겠지. 나는 계랑 컵이 없으면 라면 물을 맞출 수조차 없으므로 그들을 깔볼 자격이 전혀 없다. 다만 나에겐 그게 맞지 않다는 거다. 나는 공들인 요리가 좋다. 시간과 정성을 많이 들일수록 맛의 등급이 올라가는 요리들을 사랑한다. 가장 맛있게 조리될  있도록 손질한 재료들을 충분히 볶고, 찬장  열댓 가지가 넘는 조미료들  적절한 것을 선택해 적당한 양을 넣는 과정들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정들은  손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   1년이   되었을 때다.  번째 쉐어하우스에서 친구인 Y 함께 살게   얼마  되었을 ,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겹쳤다. 아직도 이유는 모른다. 그냥   아침부터 눈을 깜빡이는 것과 숨을 쉬는  외엔 아무것도  수가 없었다. 마침 일을 쉬던 중이라  버는 데에 영향이 없었던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그때 그냥 운 채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긴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다가, 깼다가, 자다가, 깼다가, 결국은 내가 있는 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하는 상태가 되어 며칠을 보냈다. 사흘이 조금 넘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킬  있었는데, 그때 내가 일어나자마자  일은 장을 보는 것이었다.  마트로 달려가 고기와 당근, 감자, 토마토와 샐러리를 잔뜩 샀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였다. 모두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쉐어하우스 주방에 4시간 동안 서서 재료를 다듬고 볶았다. 양파만  시간이 넘도록 볶았을 거다. 커다란 솥단지에 가득 차도록 비프스튜를 끓였다. 냄비를 붙들고 서서 주걱으로 양파를 젓는 동안 안개가 가득 껴있던  머릿속은 차츰 정리가 되었다. 불을 키웠다가 다시 줄이면서   울었던 것도 같다. 마침내 출근했던 Y 집에 돌아왔을 , 나는 뻘게진 눈을 하고 쿠스쿠스와 비프스튜를 먹으며 냄비를 가리켰다. 너도  먹어라. 그녀는 냄비 뚜껑 바로 밑까지  있는 스튜를 보고 기겁했다.


우울할 때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한다. 언제부턴가 내게는 저 루틴이 당연해졌다. 물론, 요리 하나  오래 했다고 우울감이 마법처럼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열을 가함에 따라 서서히 날아가는 양파의 아린 맛이  우울까지 함께 가져가 주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차근차근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다 보면 한눈을  새가 없다. 우울에 빠질 틈도 없다. 그게 도움이 되는  같다. 혼자 생각을 하다가도 손에 힘이 빠질라 치면 냄비  재료들이 내게 소리를 지른다.  탄다!  탄다고! ! 그럼 나는  멀리 날아가려는 정신을 붙잡아 다시 주방으로 끌어당긴다. 그걸   번쯤 반복하고 나면 어느새 나는 조금 괜찮아져서, 내가 만든 비프스튜를 먹을  정도는 생기는 것이다. 가끔은 남들에게 같이  해치워 달라며 농담을 건넬 수도 있다.


이 효과는 비단 내가 우울할 때만 발휘되지는 않는다. 평소에도, 특히 내가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 정성 들인 요리는 그 힘을 발휘한다. 새 찌개를 끓이고 새 반찬을 해서 먹거나 좋아하는 오일 파스타를 해 먹고 나면 이상하게 또 다른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긴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세 끼를 모두 챙겨 먹는 날엔 밀린 집안일을 모두 해치울 수 있다. 대충 끼니를 때울 때는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몇 달간 월급을 모아서 산 가방이나 좋은 호텔룸 만이 사치가 아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서 차린 정성 들인 밥상 또한 사치다. 우리는 '혼자 먹는데 뭘 굳이 이것저것 해 먹어',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지 않은가. 혼밥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 중 하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그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조리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드는지, 어떻게 어레인지를 하면 더 맛있는지 생각하는 것부터가 나만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마음에 드는 식기에 그것을 담아내 먹기까지 그 모든 것에 오직 '나'가 가득하다.


그러니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을 때는 혼밥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가장 본인 다운 일면이 드러나는 분야니까. "혼자 식사하실  주로  드세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뻗어갈  있는 가지는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내가 당신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니 일석이조다. 잠깐, 이래서 한국인들이 그렇게  먹자는 말을 자주 하는 건가? 혹시 이걸 나만 이제 깨달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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