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렴이 타인의 고독으로 방향을 튼다면

9와 숫자들 - 송재경

최근 안 좋은 일을 겪고난 뒤 내가 가장 많이 찾게 된 음악은 9와 숫자들의 노래였다. 끝없는 우울을 그린 〈평정심〉, 사회적 시선의 무게 속에서도 “죽지 말라”고 애원하는 〈죽지는 마〉,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면서 끝내 지켜내고자 하는 다짐을 담은 〈높은 마음〉까지. 사실상 현실을 바꾸기 어려운 뒤늦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내겐 더욱 의미없는 음악 감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가사들은 내 마음을 깊이 울렸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9와 숫자들을 좀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9와 숫자들의 세계관은 리더 송재경이 담당하고 있다. 1970년대 말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공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은 그의 삶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퀸이나 마이클 잭슨의 팝송을 즐겨 듣는 정도였지만, 곧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 클래식 기타반에 들어가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에는 친구들과 밴드를 꾸려 무대에 올랐다. 대학 시절에는 ‘관악청년포크협의회’와 ‘그림자 궁전’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며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을 시도했다. 그때의 음악은 대중과 직접 소통하기엔 멀었지만, 그 안에서 그는 스스로의 색깔과 비판적 의식을 다져갔다. 훗날 대중적인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하더라도, 이 시기의 문제의식은 그의 음악적 뿌리로 남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5년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 설립에 참여하면서 한국 인디 음악의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데 함께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같은 밴드가 이곳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2008년, 그는 자신이 직접 밴드 ‘9와 숫자들’을 결성해 리더이자 보컬로 나섰다. 그의 예명 ‘9’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용해온 이름으로, 완전한 10에 이르기 직전의 결핍을 뜻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핍이나 부족함이 삶의 동력이 된다.” 그에게 9라는 숫자는 단순한 예명이 아니라 목표와 꿈, 그리고 살아가게 하는 원리였다. 2009년 발표한 첫 정규앨범 <9와 숫자들>은 2011년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지금 그는 포스코건설 전략기획실 팀장으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주말마다 밴드와 호흡을 맞춘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문제의식이 맞닿아 있었다. 대학 시절 함께 ‘그림자 궁전’에서 활동했던 동료 ‘꿀버섯’은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프랑스 시인의 말을 전했다. 그 생각은 훗날 그의 2016년 6월 앨범 <유예>에 담겼다. 서른을 앞둔 시기, 그는 꿈을 유예해야 하는 청년 세대의 고민을 몸소 느꼈다. “여유 있게 고민을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더라고요.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살기도 하고.” 그 안타까움이 노래 가사에 담긴다.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빛을 잃은 나의 공책 위에는/찢기고 구겨진 흔적뿐/몇 장이 남았는지 몰라/무얼 더 그릴 수 있을지도"


이후 같은 해 12월 발표된 <수렴과 발산>은 본격적으로 사회적 안타까움을 넘어 해결책을 제시한다. 송재경은 이 앨범에서 직접적인 참여는 적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자의 고독 안에 머물러 있던 수렴이 타인의 고독으로 방향을 틀 때 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앨범 소개 문장은 밴드가 지향하는 철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수록곡 <안개 도시>와 <싱가포르> 등은 냉소의 시대에 낯선 이와의 연결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특히 타이틀곡 <엘리스의 섬>은 기후위기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섬처럼 고립되는 사람들의 연대를 다뤘다. "먼 옛날 엘리스 제도(Ellice Islands)라 불리던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Tuvalu)의 사연에서 시작된 노래입니다. 해수면상승으로 국토 일부가 잠기기 시작했고, 늦어도 100년 안에는 국토 전체가 수몰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투발루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과 다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고 뉴질랜드와 같은 주변국으로 이주하고 있는 투발루인들에게 우리는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고독한 투발루인들이자, 엘리스의 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여담이지만 송재경은 직접 투발루 정부에 응원한다는 내용의 이메일도 보냈다고 한다.


노래 가사는 이렇게 전한다. "파도가 오갈 때마다/우리의 땅은 조금씩 좁아져/꼭 끌어 안지 않으면/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 무슨 일이 있더라도/그대 곁을 끝까지/내가 지킬 거라고/돌아본 미소의 의미를 알고 있어"

2019년 발표한 <서울시 여러분>은 그가 직접적으로 사회 참여적 시선을 담았다고 밝힌 앨범이다. 앨범 타이틀의 의미는 더욱 정확히는 '서울시'에 살고 있는 '여러분'이다. 만연한 불평등과 일상 속 방치된 위협, 억눌린 분노, 불투명한 미래와 불공평한 기회 앞에서 느끼는 절망 또는 허무, 편중된 부와 그로 인한 박탈감, 공동체 분화에 비례해 뒷걸음질 치는 문화와 제도, 언젠가부터 다수의 정서를 좀먹고 있는 뿌리깊은 고독. 그 속에 갇힌 '여러분'. 송재경은 그런 "작거나 적거나 약하거나 가난하거나 달라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많은 이들"에게 "조건 없는 응원과 위로"를 보내기 위해 윤항기가 쓰고 윤복희가 부른 '여러분'을 염두에 두고 이 앨범을 구상했다.


2021년,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노래 〈Opening〉을 발표했다.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제안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 번 노크를 하면 활짝 열어주기로 해”라는 가사에, 2007년부터 세 차례나 좌절된 입법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담았다. 같은 해 발표된 〈죽지는 마〉는 뮤직비디오가 성소수자의 서사를 연상케 한다. 뮤직비디오에 덮힌 가사가 그의 연대 의지를 담는다. "난 세상을 바꿀 수 없어/무엇도 해낼 수 없어/널 괴롭히는 어둠에/맞설 용기조차 없지만/적어도 나를 바꿀게/조금이나마 너를 위하는 사람으로/울어도 돼/부숴도 돼/싸워도 괜찮아/죽지는 마/멈춰도 돼/던져도 돼/쉬어도 괜찮아/죽지는 마"


그는 자신의 위치를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직접적인 차별을 아주 많이 경험하지는 못했다. 소수자로서 정체성을 제대로 가져보지 않은 내가 과연 그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이게 가식이나 위선은 아닐까.” 하지만 그는 결국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계속 하고 싶다.”


그의 사회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것은 연인 조민경 MBC 라디오 PD였다. “내게 ‘여성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그게 내 사랑하는 사람, 내 삶의 일부인 사람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애 과정에서 "교양의 시간을 쌓으며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이 해야 할 일은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찰리 브라운처럼 소심한 저에게, 스누피의 자유로운 꿈과 라이너스의 섬세한 감성과 루시의 용기있는 일침과 슈뢰더의 묵묵한 올바름을 가르쳐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검정치마를 중심으로 인디 씬의 여성 혐오 논란이 불거졌을 때, 그는 조민경 PD와 함께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직격 비판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남성 음악가로서 항상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며 음악 활동에 임하고 있다”면서 “최근부터는 같은 공연에 참여하는 음악가들의 행적이나 평가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디 음악계에도 ‘빨래’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음악가의 여성 혐오적인 행동이나 곡이 문제가 됐을 때, 그것을 고수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해야 실망을 느낀 팬들이 다시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음악 외에도 그는 영화와 책을 사랑했다. 대학 초년생 시절에는 영화감독을 꿈꿀 만큼 관심이 많았고, 상업영화보다는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를 즐겨봤다. 활발히 관람한 덕에 영화관 VVIP 회원증까지 발급받은 것이 그의 자랑거리다. 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 시리즈에 참여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도서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박완서의 『나목』,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등이 있다.


그의 음악관과 인생관을 설명하는 노래는 아마도 2014년 〈높은 마음〉일 것이다. 그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유지해온 높은 마음을 응원한다.

엽서 위에 새겨진

예쁜 그림 같은

그럴듯한 그 하루 속에

정말 행복이 있었는지

몸부림을 쳐봐도

이게 다일 지도 몰라

아무도 찾지 않는 연극

그 속에서도 조연인 내 얘긴

그래도 조금은 나 특별하고 싶은데

지금 그대와 같이 아름다운 사람 앞에선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밝은 눈으로 바라볼게

어둠이 더 짙어질수록

인정할 수 없는 모든 게

사실은 세상의 이치라면

품어온 옛 꿈들은

베개맡에 머릴 묻은 채

잊혀지고 말겠지만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활짝 두 귀를 열어둘게

침묵이 더 깊어질수록

대답할 수 없는 모든 게

아직은 너의 비밀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