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나티 - 서동현
<패스트 라이브즈>에선 노벨 문학상을 타겠다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국으로 떠나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그리고 그와 즐겁게 놀던 남자아이가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둘은 계속 연락을 이어간다. 다시 만난 건 여자가 현지 미국인과 결혼한 뒤였다. 남자는 그제야 미국으로 향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이다. 하지만 그 인연이, 왠지 이전부터 이어져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전생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대충 그런 영화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다. 바로 빅나티다. 2003년생인 그는 여러 노래와 앨범 설명을 통해 2011년 3월 2일부터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다고 썼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의 권유로 클라리넷을 배우던 그는 합주반에서 첼로를 켜는 여자아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세상은 흑백인데 그 아이만 컬러로 보였다”는 말이 그의 첫사랑을 요약한다.
그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을 떠났다. 좋아하는 가수가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첫 앨범 수록곡 제목은 <Frank Ocean>이다.
난 너를 보고 있는데 너도 날 보고 있니
지구 반대편에서도 내가 보고 싶니
잘 살고 있니 아님 못 살고 있니
혹시 내가 보고 싶어서 막 울지는 않니
난 네게 모든 걸 줬는데 너는 떠났고
난 너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배웠어
난 네게 전화했었는데 너는 꺼놨고
나 혼자 기억들을 데웠어
이 노래를 낸 뒤, 그 여자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쑥스러웠던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 이후로 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듬해 나온 <정이라고 하자>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나는 또 네 얘기를 꺼내
보고 싶다는 넋두리에 친구들 답은 뻔해
10년도 더 된 애를 사랑할 수 있냬?
이제 그만 잊으래, 근데 그게 잘 안돼
그리고 <밴쿠버>에서는 아예 그 인터뷰의 거짓말을 고백한다.
거짓말도 했어 인터뷰에서
혹시라도 네가 내 노래를 들을까 해서
네가 좋아하던 가수 제목 그대로 했어
난 네가 있던 시간에 혼자 남기로 했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대목은 여기다.
여기까지가 네 생일날
보냈던 가사들이고, 지금부터가
진짜 나의 마음이고 그냥 노래가
좋아서 내는 거니까 의미부여 하지마
고민하다가 지웠다던 그 카톡 사실 보냈었어
근데 답장하더라고 딴 사람이
그리고 바뀐 너의 프로필 속 그 사람이
그 사람이겠거니 하며 내 마음속엔 구름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너에 대한 내 집착이
심해져 갈 때마다, 온 너의 연락 한 통이
나를 얼마나 미치게 했는지 너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모를 거야
이후로 그는 짝사랑을 접기 시작한다. 2022년 미니앨범 <낭만>의 소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표를 채워 넣었다.” 이듬해 <Hopeless Romantic>에는 “2011.03.02~2023.02.28”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스무 살까지의 사랑을 마무리한 것이다.
<마침표,>
이제 우리 마침표를 찍을 차례야
그래야 되는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쉼표 대신 점이 찍혀야 될 자리야
어차피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봤잖아
삐끗하면 비극 되는 건 다 한순간이야
사랑과 사람 그사이 우린 중간이야
그러니 하지 말자
느리더라도 박자
맞추어 그냥 각자
원래 가려던 길 가자
<마지막 시>
내겐 음악이
바다 건너보내는 우표 없는 편지였고
가사 한 줄이
몇 날 며칠을 밤새 쓴 진심이었고
<빠삐용,>
8시간 42분이
훌쩍 넘는 비행 뒤에
오랜만에 밟는
서울 땅이 차갑지 않게 데워놨어
널 위해 적당히
반가운 척을 하며
지은 어색한 미소 뒤에
터지기 직전인
심장을 감추려 숨었지
비겁하게 오토튠 위에
감정의 찌꺼기
(...)
Frank Ocean에서부터
Vancouver 마지막 시까지
너의 바짓가랑일
아직 못 놔서 마침표 뒤에
찍어놨었지
작지만 큰 너를 꼭 닮은 쉼표 하나를
하지만 같은해 아마 짝사랑을 이뤘나보다.
<밴쿠버2>
2011년의 봄 그 후로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친구로
평생 남을 줄 알았던 내가
네 전부가 된 그날 그때 순간부로
밴쿠버에서 유학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지라 반가운 마음에 처음 듣게 됐던 가수였다. 장거리를 오래 해본 사람들은 공감할 만한 가사들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