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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Mona May 06. 2023

자꾸만 1인석을 떠나려 하니 괴로운 걸지도 모르겠다

<은교>에 그런 대사가 있다.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 줄 알아요?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래요"


나는 주로 먹는다. 혼을 빼앗아줄 일터가 없는 주말이나 연휴에는 겹겹이 솜이불을 덮어둔 것 같다. 냉털을 하거나 적당히 먹고도 만족스럽지 않아 모로 누워 시키지도 않을 배달 어플을 뒤진다. 2018년쯤, '나 섭식 장애가 아닐까'라는 자가진단으로 병원에 발을 들인 후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다. 그때도 조금 나아진 지금도 먹토나 먹뱉 같은 걸 하지는 않으니 병증의 경중을 따진다면 우스울 수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외로울수록 사고의 시간 속 음식은 더욱더 강렬해진다. 먹고 나면 빠르게 다음 타깃을 찾는다. 또 하나의 강박인 돈이 아니었다면 15kg보다 더 많이 찌웠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은 지나간다.' 첫 번째 책 에필로그에 썼던 문장이다. 한동안 주제에 안 맞게 북적이다 다시 정적으로만 채워진 시간들을 보내게 되니 간사하게도 외로움의 비린 냄새가 생경하다. 장대비를 뚫고서 9시 치과 예약도 지켰고 처음으로 토요일 오전 필라테스 수업도 다녀왔으며 코인 노래방에서 옛날 노래를 잔뜩 부르고 왔지만 그 무엇도 집어넣지 않은 것 같은 허기에 오늘 뭘 더 시켜 먹을 수 있는 지갑인지, 방금까지 먹어서 소화불량인 뱃속은 오늘 밤까진 도저히 무리인지 한 번 더 살핀다. 오후 9시 30분 정도가 되면 들락이던 어플을 끄고 '먹고 싶었던 것 3개 중 2개 정도는 먹었으니 오늘은 이 비관을 그만두자' 하고 적당히 타협할 수 있게 된다. 대신 따끈하게 호박팥차를 한 잔 끓여 왔다.


허기는 어떻게 달래는 걸까. 

많은 걸 귀찮아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지뢰를 피한다는 말을 봤다. 20대 때 마음먹고 방종한 기간은 딱 3개월이었다. 타고난 성질에 맞지 않아 막살겠다는 다짐마저 관두고 몇몇을 만났다. 누군가와 매 순간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안정감인지를 깨닫고 그마저도 시큰둥하다. 이런 마음은 시장(?)이 귀신 같이 알아채는지 누군가의 니즈가 되지도 않는 모양이다. 뭐, 딱히 아쉽지도 않지만.

해가 갈수록 친구는 소모품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제각기 다르기야 하겠지만 생애주기는 정해져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밥을 해주던 밥솥이 아무런 기별 없이 무슨 짓을 해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듯이 어느 순간 까무룩 하고 끝나있는 것. 책상 앞 냉장고 벽면에 붙어있는 즉석 사진들을 조심히 떼어낸다. 이제 자주 볼 수 없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손을 놓아버린 이, 직장이 바뀌면 나를 잊어버릴 이... 생동했던 순간마저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미 넘어간 페이지를 계속 잡고 있다가는 이도 저도 안된다는 조금의 연륜. 


찾아갈 이가 없다고, 찾아와 줄 이는 영영 없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아무나 와서 폭 안아달라고 구구절절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게 술을 달고 리본을 매어 도매금으로 넘길 수 없으니 오늘도 찾는다. 즉각적인 보상을. (그래서 지금 먹고 싶은 것은 부드러운 생크림 카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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