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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rukinasy Apr 19. 2017

기차 안에서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러시아 _ 11 : 시베리아횡단열차, 일상

20170204→0205, №007H, 3등석(6인실) 구형 객차, 이어서 일기




두 번째 밤도 푹 잤다. 이제는 기차의 흔들거림이 상당히 마음에 들 정도다. 물론 가끔씩은 그 흔들림이 격해져서 깨기도 하지만, 그 기분 좋은 진동에 다시 잠들곤 한다. 그러다 충분히 잤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났는데,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아직 뜨지 않았다. 역시 기차가 북서쪽으로 가면서 위도가 올라가다 보니 일출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해가 엄청 천천히 떴는데, 그래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일출을 즐길 수 있었다. 어차피 이날은 날이 흐려서 제대로 된 일출은 못 봤지만, 그 나름대로도 장관이었다. 특히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 안에서 광활한 눈밭을 배경으로 한 일출이라는, 그 상황이 더해주는 멋이 상당한 것 같다.


물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어두운데 찍으려니 사진은 잘 안 나온다. ⓒ


산이 태양을 가리면 이런 느낌. ⓒ




일출을 보며 티타임을 가지고 있으니 지상은 서서히 밝아져 왔고, 그러는 사이 길게 정차하는 역에 도착했다. 사실 간밤에도 길게 정차한 적이 두 차례 있었지만, 자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간단히 채비를 하고 나갔는데, 이번에는 시야가 전반적으로 트여서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높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평평한 곳에 세워진 마을을 조망할 수 있었고, 산(山)도 멀리 낮게 펼쳐져 있어서 개방적인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트이게 보이는 구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


풍경을 감상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개가 한 마리 와서 어슬렁거린다. 경계하는 기색도 없고 친근한 기색도 없이, 그냥 거기 존재하고 있을 뿐인 개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서로 크게 의식하지 않지만 편하게 있다는 그런 느낌이 안정감을 준다. 서로 살펴보기는 하지만 큰 관심은 주지 않는 그 정도의 거리감이 상당한 만족감을 준다. 그런 모습이 좋아서 사진을 좀 더 많이 찍고 싶었지만, 나에게 관심을 크게 주지 않는, 지나가던 개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서 사진을 찍는 것도 이쪽에서 거리감을 지나치게 좁히려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으니, 그건 또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살짝만 찍었다. 그리고 개는 근처에서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다시 가던 길로 갔다.


지나가던 개는 쿨하게 떠나주지. ⓒ


이 역에는 그래도 작은 노점이 몇 개 있었지만,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다른 역에는 일반적으로 노점이 거의 없다. 하긴 추운데 밖에서 장사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 겨울에는 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역내 매점은 대부분 열려 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이번 기회에 어제 저녁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매점을 자세히 관찰했는데, 여러 방식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유리창에 상품을 진열해놓고 가격을 명시한 뒤 판매하고 있으며, 손가락으로 대충 찍으면 그쪽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을 텐데도 찍은 상품을 꺼내 주었다. 물론 러시아 사람들은 말로써 다 해결한다.


일반적인 노점의 모습이다. 대부분 소박한 구성이다. ⓒ


일반적인 역내 매점의 앞 모습. 여러 물품에 가격이 붙어있다. 가공육류나 빵류는 있다면 안에 있는 편. ⓒ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차를 정비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정비가 다 끝나니 곧 출발시간이 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치도 예쁘고, 개도 귀여웠고, 궁금증도 해결할 수 있어서 상당히 알찬 정차시간이었다. 이제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위해 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왼쪽은 송아지맛 도시락, 오른쪽은 소맛 도시락. 포크가 들어가있다. ⓒ


기차는 다시 출발했고, 우리는 아침으로 컵라면 도시락(Доширак)과 소세지를 먹었다. 도시락에 누룽지를 살짝 섞여서 먹었는데, 말이 누룽지지 사실상 건조된 익힌 쌀처럼 먹고 있었다. 국이든 라면이든 처음에 같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조금 늦기는 하지만 맛있게 잘 불어난다그러면 식은 밥을 말은 것처럼 되어서 쌀이 상당히 맛있게 된다. 쌀 속의 수분이 다 빠져있는 상태에서 국물이 스며드니까 그런 것 같은데, 굳이 이런 상황이 아니라 평소에 이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라면에 밥을 말아먹을 때 식은 밥이나 건조된 밥이 없으면 누룽지를 한 팩 넣는 것이 더 편리하고 나을 것 같다.


누르렁하지만 제법 먹을만하다. ⓒ


소세지는 탱글거리는 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입자가 상당히 고운 데다가 부드러워서, 씹으니 바로 으스러졌는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질감의 소세지를 맛본 적이 없었다. 무엇이 들어간 소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을 봐서는 일단 돼지가 주재료인 것 같은데, 같은 재료로서 어떻게 이렇게나 다른 질감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하다. 가능하다면 뭔지 알고 먹고 싶었지만, 글자가 작은 데다가 키릴 문자이고, 울퉁불퉁한 표현에 인쇄되어 있다 보니 OCR 인식도 안 되는데다, 보고 타이핑하려니 암 걸릴 것 같아서 그냥 넘겼다.




우리 자리의 복도쪽 좌석은 그 누구의 좌석도 아니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렀다. ⓒ


아침을 먹으니 이제 또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차도 마시고 그냥 누워도 있고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풍경도 보고 괜히 사진도 찍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금방 정차역에 서게 되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귀찮은 데다 바깥 경치도 그저 그래 보여서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데이터가 좀 잡혀서, 내일 하차하고 난 뒤의 동선을 체크했다. 그러다 기차가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역에서 새로운 사람이 내 윗 침대에 탑승하게 되었다.


3명이서 탑승했으니 언젠가 누군가 와서 나의 윗자리에 탑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3일째가 될 때까지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에 의식을 안 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른 사람이 와서 매트리스를 깔고 시트를 덮어 씌우고 있으니 괜히 어색한 기분이다. 물론 가장 불편함을 느낀 건 그 사람일 것이다.


내 윗자리인 사람도 종종 이쪽에 앉아 있었다. ⓒ


그 사람도 그랬지만, 4인 쪽 2층에 혼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대부분 복도 쪽 빈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라면 그 밑 1층에 앉아있는 것이 맞겠으나, 모르는 사람들과 옆에 붙어 같이 앉아 가는 것보다는 혼자 앉아서 가는 것이 편할 테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특히 밥을 먹을 때는 테이블이 필요하니 빈 복도 쪽 자리에 앉아 먹는 경우가 많았다. 4인 쪽 테이블은 안쪽에만 있기 때문에, 자리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쓰기 힘들고, 그래도 남의 자리인데 깊숙이 들어가 앉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다 혹시 복도 쪽 자리에 주인이 생겨버리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거나, 다른 복도 쪽 빈자리를 찾아 옮겨 다녔는데, 포화 상태가 되면 서로 모르는 사이더라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기도 했다. 그리고 유별나게 우리 쪽 복도 좌석이 계속 빈 상태였던 터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앉았는데, 그들을 언뜻 관찰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테이블을 편히 쓰기 힘든 사람들이 돌아가며 쓰는 식탁이 되었다. ⓒ


주로 관찰했던 것은 그들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먹는 사람은 빵에 여러 가지를 발라 먹었고, 컵라면이나 인스턴트 매쉬드 포테이토를 먹는 사람도 많았다. 풍족하게 먹는 사람들은 거기에 소세지나 저장육을 잘라먹거나, 컵라면에 넣어서 먹기도 했다. 그 외 객차에서 파는 소가 들어간 빵이나 샐러드를 먹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서 싸온듯한 도시락(Lunch box)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차(茶)를 엄청 즐겨 마시던데, 그러면서 간단한 비스킷이나 쿠키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객차에서 좋은 품질의 컵을 빌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용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차(茶) 전용 텀블러 같은 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그런 제품이 없는 건지, 있어도 안 사서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없다면 누가 가서 팔아도 잘 팔릴 것 같다.




오후에도 어떤 역에 길게 정차를 했는데, 소세지가 생각보다 빨리 떨어졌기에 다른 단백질 공급원을 찾고자 매점으로 갔다. 매점은 보통 한 역에도 여러 개 있는데, 취급하는 물품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에, 살짝 봤을 때 원하는 품목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는 편이 바람직하다. 가격은 보통 동일하니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가보니까 여러 육가공품들이 있었지만 뭔가 확신이 확실히 가는 것이 없었는데, 개중에 형태가 제대로 보여서 그나마 나아보이는 닭날개 무더기를 샀고, 어쩌다 보니 빵도 샀다. 닭날개는 가볍게 훈연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특별한 시즈닝이 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데워서 먹으니 나름 맛있었다. 그러나 빵은 약간 마른 떡과 같은 질감도 조금 나는 게 씹기 미묘하고 퍼석해서 별로였지만, 그냥저냥 먹을만하긴 했다.


진공포장이 되어 있어서 편했던 닭날개. 맛도 나름 좋았다. ⓒ


먹고 나니 또 할 게 없어서 다음 정차역까지는 다시 빈둥거린다. 예전에는 인터넷 없이도 잘만 시간을 잘 보내고 종종 발전적으로도 보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인터넷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 하겠다. 어느 여행기를 보면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수다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고도 하지만, 그건 그럴 성격이 되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고, 애초에 객차 안이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행과 드문드문 얘기할 뿐,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하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을 못 견디는 사람에게는 정말 수행(修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치ㅡ타 역. ⓒ


자정쯤 되어 또 다른 길게 정차하는 역에 도착했는데, 규모가 큰 도시인만큼 자정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타는 사람도 많았는데, 대부분의 빈자리가 여기서 채워졌다. 심심한 데다가 잠들지도 않았기에 밖에 나와서 매점을 들렸는데, 이번에는 간식 위주로 샀다. 그런데 계산할 때 거스름돈이 없다면서 대신 체리토마토 한 팩과 인스턴트커피를 받았는데, 체리토마토는 일부분이 썩어있었기에 그대로 버렸고, 인스턴트커피만 마셔봤는데 생각보다 마실만 했다.


마지막 날 처음으로 정차한 역. ⓒ


그러다 잠들고 깨니까 첫 기차여행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정차시간만 기다리는, 지루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생활을 잠시 쉬고, 시베리아의 중심인 이르쿠츠크 역에 내려 바이칼 호수로 가야 한다. 마지막 날도 그때까지와 비슷한 생활을 보냈는데, 먹고 자고 싸고 듣고 보다가 길게 정차하면 내려서 바람을 쐬고 매점도 구경하는 식이었다. 다만 물건을 사지는 않았는데, 어차피 곧 내리기 때문이다.


전반부 4일간의 여행을 통해 침대칸 기차여행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게 바뀌었다. 러시아 기차의 나름대로 쾌적한 시설과 넓은 공간도 주요한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함께 했기에 더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여행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했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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