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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 Sep 12. 2024

나만 육아에 진심이고 남편이 철 없어 보일때

육아에 대한 욕심과 기준, 그리고 남편의 자리 생각해보기

 최근 내 육아 스트레스, 남편에 대한 불만, 아이와의 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이 있었다. 우리 부부와 가까이 지내는 지인 부부가 있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우리 부부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연애때 엄청 많이 싸웠고, 결혼 후에는 싸움이 많지 않았는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다시 종종 싸우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주된 갈등은 나는 남편이 나와 아기를 위해 전날 밤 미리 컨디션 관리를 잘 하면서 조금 더 육아와 내 씻는 시간을 위해 흔쾌히 아침 시간을 내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고, 남편은 내가 육아의 책임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특히 지난번 글에도 올렸었지만 나는 남편이 새벽 늦게까지 게임을 하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게 여전히 불만이었고, 남편은 아침 시간에 자신의 컨디션과 회사 출근에 무리가 갈 정도로 내가 나의 씻는 시간을 고수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내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남편이 너무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 깊은 곳의 진짜 문제는 바로 육아의 책임과 육아에 대한 욕심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침에 씻고 싶은 이유가 '아기가 나가자고 할때는 언제든 나갈 수 있게 준비하고 싶고, 나도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고 싶다.'는 것인데, 사실 이 주장에 남편의 자리는 없다. 특히 우리 아기는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리고 양가 부모님이 오셔도 편안하게 노는 시간이 짧다. 그래서 다른 어른에게 아기를 잠깐 맡기고 씻는 것이 매우 불편하고 내 마음도 조급해져서 편안하지가 않다. 즉 내 마음안에는 아기가 우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나는 씻어야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나는 사람이라서 씻고나면 뭔가 환기가 되고 힘이 나는 이유도 있긴하다. 반면 남편의 경우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육아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고 싶고, 예상치 못하게 그 시간이 깨졌을 때(새벽에 아기가 울어서 자신의 수면시간이 너무 부족할 때)는 아침에 내가 씻는 시간을 양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너무 철이 없고 너무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는 예민한 아기를 키우면서 수면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맨날 고군분투하는데, 자신은 분리수면으로 최소 수면시간도 보장되어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으로 게임을 늦게까지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씻는 시간을 더 내어달라고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자꾸만 나랑 남편의 상황을 내 기준에서 비교하게 되었고, 내가 남편이라면 난 더 자유를 줄이고, 조금 더 일찍 자고, 아침 시간에 더 많이 도와줄텐데 생각하니 화가 더 많이 났다.


 그런데 지인 부부의 남편이 우리 남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OO이는 지금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자신만의 최소 시간을 새벽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현재 양육의 책임자는 너인데 너의 욕심을 자꾸 OO이에게 강요하는 것 같다. 너가 힘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는건데 (어린이집, 양가 부모님) 애한테 너무 많이 맞추어져 있다. 너가 현재 상태가 버거우면 그걸 덜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게 맞다"고 말했다. 처음에 들었을때는 그 말이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빠가 말한 관점으로 깊게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일단 마음에 넣어두었다. 무엇보다 특히 오빠가 하는 말이 그동안 남편이 나에게 불만으로 이야기했던 내용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몇번이나 나에게 "너가 양육의 책임자인데 왜 자기에게 희생을 강요하느냐, 물론 양육을 안하겠다는건 아니지만 자꾸만 자신에게 더 많은걸 요구하는게 싫다."고 했었다. 무엇보다 오빠의 말을 듣고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을 보니 뭔가 있긴 있구나 싶어서 글을 쓰면서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정말 생각해보면 나는 아기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한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렴풋이 그런가 느끼긴 하지만 아직 어느정도인지는 완전히 깨닫지 못해서이다). 특히 36개월까지는 더 정성들여 키우고 싶고, 아기에게 불필요한(?) 좌절, 양육자에게로부터 떨어지는 경험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이건 내 안의 약한 부분과도 많이 닿아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 복직도 미루었고 아기의 비위에 맞추어 내 잠도, 체력도 모두 갈아넣고 있다. 그런데 이게 너무 힘들다보니 남편에게 조금 더 조금 더를 요구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나랑 아기만 생각하면서 남편의 주장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심한 것으로 치부했었다. 예를들면, 미리 예정되어있던 나의 자유부인 데이에 남편도 친구들과 함께 보러가고싶은 축구 경기가 생겼다. 내가 복귀 가능한 시간과 남편이 나가야하는 시간 사이에 2~3시간 정도의 갭이 있어서 남편은 어머님께 아기를 맡기고 가고싶어했다. 이때 우리 둘의 입장 차이가 크게 났는데, 나는 아기가 아직 어머님이랑 잘 있지도 못하고 계속 울텐데 굳이 그렇게 까지 놀러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남편은 물론 아기가 너무 힘들어하면 못갈 수도 있지만 내가 처음부터 너는 당연히 못나가는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요구를 함께 고민해주지 않는게 화가났었나보다.


  지인 부부네 오빠가 말한 이야기를 이 사건에 대입해보니, 사실 아기가 2~3시간동안 낯가리면서 어머님이랑 불편하게 있는 것이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되면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아기가 걱정이 되어 빨리 돌아와야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들어서 싫기도 했다. 반면 남편도 자유남편을 한지 굉장히 오래되었고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보러간다고 하니 너무나 가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든 지금 양육의 책임자는 나고 남편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남편도 남편의 요구를 할 수 있고, 어머님께 맡겨보자는 대안도 내놓긴 하였다. 내 기준과 생각에 아기가 힘들것 같고 나 마음도 편치 않은 것이 싫은 건데, 사실 이걸 또 남편에게 무조건 내 말대로 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는 양육과 가사일 참여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나도 남편의 요구와 주장을 조금 더 인정하고 함께 고민하고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너무 자주 불평하고 사소한 것에 짜증을 많이 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부부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남편은 자신의 불편함, 요구사항을 표현하는 것이고 나도 그걸 내 기준에서 생각할게 아니라 조금 더 귀기울여서 듣고 반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육아에 있어서도 내 욕심을 남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만약 욕심이 생겨서 뭔가 도움이 필요할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요청을 하는 단계를 거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남편이 나에게 불만이라고 이야기했던 부분도 내가 이런 태도가 없었기에 아마 화가 났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우리 아기인데, 나도 이만큼 하는데 당연히 남편도 이만큼은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면 끝이 없는 싸움이 되는 것 같다.


 결국 남편은 축구 경기를 보러 가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님께 아기를 봐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으나 어머님의 대답이 "아직은 아기 상태를 보았을때 계속 울고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안된다. 최소 두돌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였기 때문이다(어머님 생각이 내 생각과 동일했다!). 그래도 남편은 흔쾌히 축구 경기를 보러 가지 못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일련의 과정에 만족하였다. 내가 자신의 의견을 위해서 어쨌든 함께 대안을 생각해주고 동의해주었고 그래서 어머님께 물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반대한 것이었으나 그래도 남편을 조금 더 배려하였다면 어머님께 물어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아기가 좀 힘들어하더라도 남편의 삶도 생각해 주는 마음이 필요할 때가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아침 시간에 대한 싸움은 결국 내가 아기 밥을 먹일때 남편이 씻고 준비하는 것으로 시간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스케줄만 바꾸어 해결하였다. 물론 남편이 너무 힘들어 할때는 나도 내 샤워 시간을 양보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어릴때는 어쩔 없이 아기 중심의 삶이 되기는 하지만 이것이 너무 균형을 잃어서 부모의 삶이 사라지거나 버거울 정도가 되면 안되겠다 싶었다.


 이 글의 결론은 '내 욕심과 기준을 남편에게 강요하지 말자.', '남편의 요구와 짜증에도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귀기울여 듣자!',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 엄마가 되자.'이다. 아! 그리고 내 안에 양육에 완벽주의, 높은 기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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