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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Apr 25. 2020

전시되는 자와 구경하는 자

『희망 대신 욕망』 같이 읽기 3



204.

장애인들은 많은 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는 그 작은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전시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장애인과 같은 비정상 세계의 거주민들은 정상의 세계로 나올 기회가 거의 없다.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놓고 시행되는 주민자치센터의 쌀 전달식은 어떠한가. 노인들을 길게 줄 세워 몇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한 후 한 사람당 2백 원씩을 지급한 서울의 한 교회는 어떠한가. 이 모든 곳에서 전시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 전시되는 자와 구경하는 자, 그들은 각각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


206.

나는 그저 ‘전시’되었다. 그들의 모임에서 나는 일종의 간판이었다. 그들이 모임을 유지하면서 가꿔온 화초 같은 존재였다. 우리 어머니의 존재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어머니는 감사하기 위해서, 나는 전시되기 위해서 그 자리에 불려나간 것이다. ‘정상 세계의 중심’에 사는 그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는 하나의 위안이요, 뿌듯함이요, 그들의 삶을 정화시켜주는 화초였을 것이다.      





전시되는 자와 구경하는 자로 나뉜 두 세계에서 목소리 권력은 철저히 한쪽으로 치우친다. 한 인간을 도구화하고 타자화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지 않는 거다. 마치 물건처럼 '진열'된 채로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다. 

여기서 김원영 작가가 말하는 모임에 활용된 채 병풍처럼 서 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살아있는 존재가 단지 그들의 삶을 정화시켜주는 '화초'였다는 표현이 묵직하게 울린다. 휠체어 리프트를 탄 사람을 옆에 세워두고 기념 사진을 찍는 것, 그걸 성과로 이용하는 것만큼 눈에 띄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지점들을 에피소드로 잘 풀어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게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자의식이 다소 과잉된 부분마저도 유머로 풀어내는데, 그 유머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걸 독자가 느낀다는 건 그만큼 작가가 그런 지점을 잘 파악하고 의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아래에 인용한 발췌문 또한 기존의 관념을 깨고 사회 속 장애인의 위치와 욕망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248.

2002년 방영되어 지금까지도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뇌종양에 걸려 점차 운동 기능을 잃어가는 주인공 고복수는 어느 날 아침 연인 전경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복수 : 난…… 경이 씨한테 죽을 때까지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아주 야한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경 : …….

복수 : (다시 장애인 흉내를 낸다) 남자 같아요? 야해요?

경 : …… 결혼한 사람들이, 뭐 …… 죽을 때까지 야하게 사나요?

복수 : ……난 아직 서른 살도 안 됐어요. …… 그리고 어쩌면, 서른도 안 돼서 골로 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내 몸이 야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경이 씨한테……. 경이 씨는, 내 구역질 나는 영혼까지 좋아해주지만……근데, 난 오히려……경이 씨가, 내 몸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331.

게르니카에서 활동하며 연세대학교의 장애인편의시설, 장애인학생 지원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료들과 싸우면서 자신만의 언어를 발전시킨 김형수는,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글을 쓴다. 이 글에서 김형수는 왜 장애인은 늘 천사 같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 

장애인들도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서 때로 화를 내고, '재수 없게' 굴어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하면 기사를 내보내지만, 왜 수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수용되어 있고 노동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현실에는 주목하지 않는가. 김형수는 장애인들이 '나쁜' 장애인이 될 수 있어야 하며,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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