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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May 01. 2020

코로나 시대의 중고거래 (1)

네고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실직상태라, 돈이 얼마 없는데 2.5에는 안 될까요?” 딩동- 알림이 울려서 폰을 열어보니, 동네중고마켓 어플에서 온 메시지다. 벌써 다섯 번째다. 코로나 때문에 실직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구구절절한 사연이 낯익다. 창의적인 네고(negotiation: 협상,의 약자)는 없다. 차라리 그냥 좀 깎아달래지. 나는 덩달아 받아쳤다. “저도 학생이라서요. 영화관 알바도 잘리고 돈 없어서 쓰던 물건들 내놓은 거예요.” 나는 학생도 아니고, 영화관에서 알바를 해본 적도 없다. 돈이 없는 건 맞다. 거짓과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대의 말에 되받아칠 수 없는 현실로 대응했다. 지지리 궁상인 현실은 진실이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찔러보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 내서 채팅해봤자 죄다 허탕이다. 상품 게시글 아래에 쓴 '쿨거래 환영, 찔러보기 사절' 밑에 설명을 추가로 한 줄 더 달았다. “네고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


      

몇 년 전 용돈 벌이 삼아 다운받은 동네 중고 거래 어플은 내겐 별로 쓸모가 없었다. 집에 있는 물건을 살펴봐도 팔 만한 물건이 안 보였고, 사고 싶다고 생각한 물건을 검색해 봐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일단 사기 전에 사진으로 봤을 때 물건이 너무 구렸다. 사진이 구렸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둘 다 구렸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각도에 따라 조명 들이대고 찍은 삐까번쩍한 물건 사진이 가득한 전문 쇼핑몰과 달리 중고마켓에 올라온 물건들은 꽤나 사용감이 있는데다가 사진은 간 안된 요리처럼 밋밋하기짝이 없었다. 체리색 마루 위에 구겨진 옷을 턱하니 던져놓고 찍었는데, 웬걸 초점도 나가서 흐릿하다. ‘아니 보는 맛이 있어야지! 어디 갖다 버리기 귀찮아서 올린거야 다들?’      



동네중고마켓 어플이 폴더 속 다른 어플들 뒤로 저 깊숙이 어딘가 있다는 것조차 잊을 무렵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다니던 회사 상황이 악화되면서 무급 휴가를 권고 받았다. 집에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고, 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집안에 함께 머무는 시간도 잦아졌다. 넷플릭스를 보고, 집안을 쓸고 닦고, 새로운 요리를 해먹는 것도 한두 달 남짓이었다. 한달이 두달이 되고, 다시 무기한 연기되자 이건 식충이도 아니고 버는 돈 없이 삼시 세끼 밥은 지어먹는데, 가만히 식비만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참에 냉장고 파먹기 하듯이 집에 안 쓰는 물건들을 파내서 식비로 충당하는 거야!’





코로나 시대의 중고거래(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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