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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Mar 04. 2024

실패는 개척자로 살기 위한 재료

#실패는 개척자의 삶을 살게 해 준다.       

 아이들 그림을 가르치다 보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저 다 망쳤어요, 색이 바깥으로 삐져 나갔어요.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스케치북 뜯으면 안되요?

나는 매일 되풀이 되는 말이지만 또 한다. ”그냥 해, 망쳐도 괜찮아. 거기서부터 고쳐봐. 망친 그림도 보관해 둬야지 나중에 니 그림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볼 수가 있어, 학원에서 많이 망치고 가!“      


 학원에서 망치지 않으면 어디서 망쳐 보겠는가. 우리 학원은 잘 가르치는 학원이다 라는 걸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어 잘 된 그림을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자 아이가 한 작작품을 재빠르게 고쳐서 눈속임을 하긴 싫다. 나는 아이들이 실패에 익숙해지고, 거기서부터 다시 고쳐 가는 방법을 기르도록 많이 유도 하려 한다.

 이 아이들이 이왕이면 일찍이 실패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이 끝이 아니란 것을.. 그 지점에서 다시 일어나는 훈련을 많이 해 봤으면 좋겠다.      


 먼 훗날, 중요한 일에 실패 했을 때 충격이 덜 할 수 있도록, 이겨내 본 경험이 있기에, 이겨낼 근육을 장착하고 현명하게 대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험과 심리적인 부분도 근육을 기르는 일과 비슷하다.      

 시작 조차 못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차라리 작품을 망쳤을 때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시작조차도 못한다면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망친 그림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고 그것은 창의적인 작품으로 탄생한다.      

사람은 사방이 막혔을 때

비로소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인생도 이 과정과 닮아있다. 나의 인생이 망쳤다고 생각이 들 때가 온다.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이 든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 가야 하지 하는 벼랑 끝 절망에 빠져 허우적 댄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 전엔 생각조차 못했던 새로운 생각이 더 해 지고, 방법이 떠오른다. 바로 이 순간이 창의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남들이 흔히 가는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내는 시작점이다. 독특한 문제 해결력으로 인해 나의 새로운 삶이 탄생하게 된다.      


 실패에서 다시 일어서는 문제 해결능력이 바로 창의력이다. 

창의력이 길러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닥쳤을 때, 빠져 나갈 수 있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주저 않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문제나 실패가 원동력이 되어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돕는 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길의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새로운 답을 만들어 가게 된다. 그렇기에 개척자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다. 교육에서도 답을 정해 놓고 가르치는 건 교육이 아니다. 인생의 탐험 길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길러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한 미션이다. 비단 이것이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는 인생의 탐험길에 있는 탐험가다.      


 철학자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누구나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스승 자체가 결과나 답에서 해방될 때, 스승과 학습자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해진 답은 없고, 스스로 깨닫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답을 찾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정해진 답이 있는 인생이 있다고 할 때 얼마나 불행 할 것인가, 살맛이 안날 것 같다. 미래를 모르기에, 내가 새롭게 만들어 가고 개척할 수 있기에 우리 안에는 희망이라는 커다란 태양이 자리 잡을 수 있다.                    

<불국설경> 이라는 작품앞에서 나는 눈이 오는 소리에 압도 당했다. 너무 고요했고 사람한명 없었다. 눈이 올 때 주변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 그 자체가 너무 커서 나는 그림 속의 한 점처럼 느껴졌다. 2022년 서울 8월의 막바지 더위에 눈을 따갑게 만드는 짜디짠 땀을 닦아가며 보았던 불국설경은 어느덧 1월의 폭설이 내리는 겨울의 경주 불국사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먹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전통화를 넘어선 현대적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하얀 물감이 아닌, 흰 바탕 그대로가 먹의 터치와 농담으로 인하여 설원이 되었다. 전통 재료에 현대적인 시각이 더해져 시공간을 초월 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 낸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이 그림의 작가 박대성은 어릴 때, 6.25 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게 되었다. 한번도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아 본 경험이 없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의 삶의 태도와 붓과 먹이 가진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해 낸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서 세상을 초월한 듯한 정신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일화를 보면 이해 할 수 있다. 


 2021년 3월 솔거미술관에서 전시한 1억원 상당의 작품에 한 아이가 올라타서 작품이 훼손된 것이다. 미술관측에선 작품이 훼손되었으니 손해 배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험사 측과 나누었고, 이 일을 해결 할 방법을 궁리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 화백은 "다시 살펴보니 어린 아이의 눈에는 미끄럼틀처럼 보이기도 하겠다. 어린 아이가 미술관에서 나쁜 기억을 가지고 가면 안된다, 사람끼리 굳이 원수지고 살 필요가 없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 작품을 210만명이 넘게 봤을까? 그 아이는 봉황이다. 봉황이 지나간 자리에 그 정도 발자국은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면서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한 일화였다. 박대성 화가는 그림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무료로 강습을 해 왔다고 한다.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수강료를 받을 위치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에게서 글과 그림을 배운다면 가장 고상한 글과 그림을 배울 수 있을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나 또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미술적인 기술이나 그리는 방법을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술을 대하는 태도, 인간적인 태도를 익히는 것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먼저라는 생각이 갈수록 든다. 좋은 태도를 갖추고 그렸을때 좋은 그림이 그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란, 책임감이 막중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신체의 불편함을 극복했고,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우주의 생명 원리를 정신을 전달하고자 한 화가, 아이의 실수도 작품의 일부로 창조해 낸 이 화가는 시공간과 동서양을 모두 아우르면서 우리의 삶의 경계와 담을 허물고 있다.      


 모든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결국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실패까지도 나의 인생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요, 곧 예술이 된다. 우리의 인생 또한 실패로 인하여 더 견고해지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빚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성숙한 사람의 삶은 이 모든 것을 껴 안을 수 있는 통합적인 삶을 산다. 나의 실패, 못난 모습, 잊고 싶은 모습들 모두가 나의 일부분임을 인정하고 끌어 안을 때 진정한 나의 삶을 살수가 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다.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 중에서 내가 싫다고 한가지 색을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무지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성숙한 사람은 사계절 중 겨울을 좋아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주의 질서처럼 곧 돌아올 봄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실패는 앞으로의 성공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절망을 마음에 새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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