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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Feb 07. 2024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빛의 탐구로 모더니즘의 문을 열다


"베껴야 한다면 가장 위대한 것을 베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다"

 

 미술 사조가 바뀌는 지점에 서 있었던 화가를 우리는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본다. 왜냐하면 새로운 미술사조가 생성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어느 분 야 던 지 혁신적인 시대의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을 주요하게 보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대중음악계의 서태지처럼 말이다. 


 모네가 인상주의 화가로써 독보적인 자리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회화에 있어서 자유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이다. 모네는 빛을 그린 화가이다. 빛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이나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여기서 과거에 해 왔던 과학적인 원근감이나 정확한 명암은 없다. 빛에 의해 눈에 보이는 그 인상을 포착하여 그렸을 뿐이다. 어떤 의미, 사상, 내포하고 있는 뜻도 없었고, 단지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더 이상 미술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이는 그대로를 그렸다. 빛에 의한 색의 변화, 현상을 그리려 했다. 이것은 시각언어가 되었고, 미술이 보는 이에게 말을 걸어오듯이 소통의 수단이 되게 된다. 


 인상파에 이르러서 예술은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게 된다. 인상주의 회화는 문학, 음악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 분야가 된다. 인상주의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과의 단절이다. 이것이 모더니즘 미술의 출발이다. 기록하고 아는 것을 그린다는 것은 이제 사진기에게 시키면 된다. 

 현재 우리가 AI에게 많은 것을 넘겨주는 시대가 되었듯이, 모네가 바로 시대적 전환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모네는 자연의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색의 효과를 중시하게 된다. 더 이상 물체의 고유의 색은 없다. 빛에 의해 변화하는 색만 있을 뿐이다. 어떤 다른 설명도 필요 없다. 그냥 그림을 감상하면 모네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건초더미> 연작으로 모네는 생애 처음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건초더미 연작 / 클로드 모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일상의 반복’이 아닌 ‘예술에서의 반복’이라는 관점에서 반복을 바라본다. 

즉, 일반성 안에서 반복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성 바깥에서 반복을 새롭게 개념화한다. 대체불가능한 독특성 또는 특이성과의 관계 속에서 반복을 사유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들뢰즈는 반복에 대한 상식을 전복시키는 ‘반복의 역설’을 강조한다. 반복이란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결국 어제가 지나고 오늘 똑같은 것을 반복한다 해도 그건 똑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이 반복된다 해도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된다.      


 모네는 가장 위대한 것은 자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품고 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하고 모방하고 과정에서 나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모방해야 할까. 가장 모범적인 대상을 찾아 닮고 싶고 배우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는 최고의 것을 모방해야 한다. 그것을 모네는 자연이라고 하였다.     


                         

루앙 대성당 연작 / 클로드 모네 / 오르세미술관 / 1892-1894

              

 뉴욕현대미술관 (MOMA)에서 수련을 본 적이 있다. 실제 모네의 작품 <수련>을 보면 너무 커서 그 연못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어쩌면 모네는 반복해서 연못을 관찰함으로써 자연과 물아일체 상태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수련 / 클로드 모네


 우리는 모네가 그토록 모방하고자 했던 자연에서 삶의 섭리를 배울 수 있다.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은 한번 태어나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여러 역경을 통해 아름다운 꽃이 피고 그것이 반복되듯이. 

 꽃이 피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는 것도 알기에 겸손을 배울 수 있다. 식물의 종류마다 꽃이 피는 시기도 다 다르다. 모두가 다 봄에 꽃이 피길 원하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기지만 여름에 혹은 가을에 심지어 겨울의 엄동설한에 피어나는 꽃도 있다. 겨울에 피는 꽃은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이 이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 자연의 순환은 계속 똑같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는 매 순간 다름이 반복된다. 

 그러니 현재 내가 남보다 뒤처진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 남보다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저마다 다 다르고,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준비를 할 차례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올라 가 있으면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함의 이치를 알게 된다. 항상 올라가기만 하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삶은 없다 그래서 늘 우리는 삶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모네가 반복적으로 모방했던 자연.. 그것은 단 하나도 같은 것은 없었고, 그 앞에서 우리는 겸허했고, 자연과 우리는 다를 것이 없기에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곧 우리를 파괴하는 일이나 같다. 





Reference

들뢰즈와 교육 <차이생성의 배움론> / 김재춘. 배지현 /학이시습/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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