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중문에서...
시간의 여유가 많은 요즘이다. 오랜만에 이런 시간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사람이 너무 일만 해도 문제가 되려나? 남는 시간에는 조금 쉬어도 좋으련만, 이내 불안감이 찾아오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개인사업, 프리랜서들 모두 같은 마음을 품을까?
일이 많을 때는 조금 하루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다가도 막상 또 쉬는 날이 하루 이틀만 되어도 슬그머니 불안감이 고개를 드는 것이 말이다. 어쩌면 내가 심적으로 평온이 온다면 그때야 비로소 진정으로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시간이 있어 글을 쓰는 날에는 여지없이 하늘이 어둡다. 전날까지만 해도 너무 좋았는데 밤사이 하늘에 구름이 끼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거 같다.
제멋대로인 제주 날씨 좋다. 심심한 일상을 심심하지 않은 날로 기억되게 해주니 말이다. 작년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어서 제주를 벗어나 도시로 가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제주에 있다.
매일 매 순간 자연을 따라 걷기를 반복한 날, 어느 순간 지나니 마음에 조금씩 평온이 자리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연의 순리처럼 말이다. 사실, 알고 있었다. 외부요인이 내 처한 상황을 변화시켜 준다는 것보다는 그저 내가 마음을 둘 곳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요인에 그 모든 걸 넘겨버렸다는걸....
육지로의 출장이 잦은 요즘 비행기 탈 일이 많은데, 나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 한 상황에 지칠 때쯤 다른 환경에 가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에 그런 부분에서 직업적 만족도가 낮지 않다. 아니 오히려 남들이 볼 때는 어쩌면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엔 매일 한량같이 풍경 좋은 스타벅스에 가서 자리 잡고 노트북이나 두들기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상 말이다. 그것도 서귀포 중문에서 관광객이 아닌 여유를 만끽하는 느낌이라니….
틈만 나면, 일부러 걸으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까지는 버스를 타면 약 5~10분 내외로 날씨만 좋다면 늘 걷고 있다. 종종 날씨가 너무 좋아 눈으로만 간직하기 아쉬울 때마다 핸드폰으로 몇 장 남겼었는데 그 기록 중 일부라도 오늘 글에 같이 담아 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지나다니면서 유심히 보던 꽃가게 있었다. 내심 벚꽃이 피기만을 기대하던 장소 봄은 다가왔고 날씨도 따뜻하고 벚나무의 꽃 몽우리가 올라오는데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며칠간 계속된 희뿌연 하늘에 기어코 벚꽃 꽃망울이 터져버렸다.
따뜻한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펴 버린 것이다. 그래도 내심 기대해서 꽃집 앞을 다가갔지만, 하늘이 하얗게 변해 벚꽃과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무렵 아침 창밖에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바로 오늘이었다.
늘 같은 시간에 걷고 카페 가서 작업하고 돌아오는데, 오늘은 조금 빨리 발걸음을 재촉하기로 했다. 나는 일부러 꽃집 앞을 지나치는 버스를 탔다. 느낌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해가 지는 시간, 해가 떠 있는 시간, 해가 지나가는 시간... 햇빛이 비치는 각도 환경에 따라 공간은 그 모습을 달리한다.
"오후 4시가 좋겠다." 나는 시간이 맞춰 이동했다.
카페에 가는 길목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꽃향기가 중문 시내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란 듯하다.
봄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미소 짓게 만든다. 추운 기운을 따뜻한 공기로 감싸 안아 평온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또 한해의 계절이 시작된다.
가는 길목마다 사람들은 멈춰서서 사진찍기 바쁘다. 나도 그 속에 섞여 터질듯한 봄을 담기에 바쁘다. 별일 없던 일상에 이벤트가 하나 생겨난 기분이다. 가는 길을 멈춰 세우고 집중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오랜만에 느껴본다.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많이 찍을 때는 수시로 멈춰서 기록하고 담아내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볼 생각보다 앞만 보고 걸었던 날들이었는데 봄의 벚꽃이 나를 멈춰 세운 것이다.
제주도에는 동물이 많다. 유기된 동물과 방견도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애완동물도 고양이도... 개인적으로 동물을 좋아하는데 내가 바지런하지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책임감, 일의 특성상 오랜 시간 출장을 다녀야 하는 등등의 핑계로 그저 먼발치 바라만 보고 있다.
내가 사는 집에도 아침마다 고양이가 산책한다. 마당과 귤나무 사이를 걷고 있는 고양이들은 가끔 불러세우는데 그냥 쳐다보고 지나갈 뿐이다. 여태까지 지켜본 바로는 총 6~7의 길냥이들이 수시로 집 앞 마당을 지나치고 있다. 이 친구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벚꽃 얘기하다 고양이 이야기로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봄의 설렘 때문인지 자꾸 마음이 콩밭에 간다.
따뜻한 공기와 햇살을 맞으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원하는 시간대에 꽃집에 가지 못하면 내가 바라던 대로 이미지를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풍경을 담는 건 그날의 자연환경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문 스타벅스 DT 점부터 집에 가는 길, 중문초등학교 교차로까지 이어진 일직선의 길을 좋아한다. 길 양옆으로 가로수는 벚나무고 나지막하고 오랜, 빛바랜 건물들을 보면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면서 매일 생각한다. 이 길의 빛바래고 오래된 가게를 담아보자는 그런 생각? 이런 생각뿐인 일련의 행동이 나름 걸으면서 행복함을 더 해준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걷고 있노라면 마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 이 동네에 점점 정이 들기 시작했다. 번화한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들이 골목 한 칸, 한걸음 차이로 극명하게 나뉘는 이 동네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드디어 꽃집 앞에 도착했다. 내가 상상하던 그 모습이다. 다만, 이제부터는 내가 이걸 잘 담고 내가 원하는 감성과 느낌으로 편집을 잘할 수 있느냐? 인 거 같다. 내가 바라본 시각은 동화인데 사진으로 표현할 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내가 상상하는 걸 잘 표현해 보려 한다.
늘 이 앞에서 상상했던 것 중의 하나가 30분 동안 계속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담아보는 것이었다. 외국의 어느 작가가 촬영했던 사진이 떠오르는데 내가 딱 좋아하는 느낌이어서 오래 기억이 남았던 거 같았다.
다만, 이번엔 핸드폰으로 그 느낌을 맛만 보기로 하고 내년 봄에 제대로 한번 담아 봐야지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조금더 천천히 이 길을 걷고 알아가야겠다.
한동안 나름 담아내고 싶었던 이미지를 담았다. 사실 벚꽃이 흩날리는 느낌도 촬영하고 싶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이런 날씨에 바람이 불고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까지 잘 표현되었으면 하는 건 욕심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실력이 부족한 걸 수도.. 그래도 따뜻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꽃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마치 저마다 이야기하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촬영되고 난 후의 이미지를 보고 혼자 미소 짓기 바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에도 촬영했던 날이 떠올라 그날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비 온 다음 날의 날씨를 좋아한다. 밤사이 비가 내리더라도 아침만 되면 파란 하늘에 눈이 부시게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이런 날의 날씨,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집 앞 귤나무의 꽃잎에는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혀 있다.
아침마다 집 문과 창문을 열어 놓으면, 한라산이 보이는 집 뒤뜰의 귤밭에서부터 부는 바람이 거실을 지나쳐 맞은편 문을 향해 통과할 때마다 집 안 가득 귤 꽃향기가 그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날씨가 좋을 때면 나는 집에 있는 문이란 문을 다 열어 한참이나 그렇게 집안에 귤 꽃향기를 간직한다.
중문에는 천제연폭포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한 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매일 그 다리를 지나친다. 다만 계곡에 물이 있는 걸 거의 보지 못했는데 저번 며칠 동안 무섭게 쏟아진 비로 인해 계곡을 가득 채운 물을 볼 수가 있었다. 마침 날씨도 너무 동화같이 이쁜 날이어서 그 풍경이 너무나 이뻤다.
한 장소를 기억하는 건 찰나의 그 순간이 뇌리에 깊게 박힌 어떠한 조각 때문인 건지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하거나 어떤 특정 장소를 다녀와서 그곳을 기억하는 방식이 각기 사람마다 다르듯이 내가 기억하는 이 동네도 썩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나중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촬영하고 기록해야겠다.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쓰니 그간 뭘 써야 할지 몰랐던 내 마음에 작은 울림이 생기는 것 같다. 딱히 뭘 써야 할지 몰랐지만, 그냥 이렇게 뭐라도 쓰고 보니 조금 더 치유되는 느낌이 있으니 말이다. 하나의 일로 생각했던 날들이었는데.... 내가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썼던 것처럼 그냥 편하게 있는 그대로를 작성하니 오히려 편안한 마음마저 든다. 오랜만에 시간의 여유가 생겨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역시 사람은 찾아보면 할 일과 해야 할 일 그리고 미뤄났던 일련의 모든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내가 그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저기 뒤로 미루고 숨기고 보지 않아 하려 했던 것들이다.
나에게 쉼과 여유 그리고 돌아보는 모든 행동조차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꼭 필요한데, 너무 앞만을 보려 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 앞도 아닌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한쪽으로만 거칠게 달리려 했던 건 또 아니었는지 소소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제주시에 있는 친구를 보러 가봐야겠다. 나중에 햄버거 장인인 이 친구에 대해서도 글을 써봐야겠다. 정말 다정함이 온몸에 새겨있는... 처음보았을때부터 와! 이런 친구가 세상에 있을까? 싶은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