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와 '오늘, 와인한잔'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사랑받는 '허쉬'는 120년이 넘는 전통의 초콜릿 명가다. 창립자 밀턴 허시의 첫 번째 사업 아이템은 캐러멜이었다. 하지만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독일의 초콜릿을 만나고 무려 네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캐러멜 공장을 접었다. 허쉬의 관심사는 밀크 초콜릿이었는데, 당시 밀크 초콜릿은 워낙 고가였기에 부유층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허쉬는 저렴한 밀크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목장 근처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해 단가를 낮추어 밀크 초콜릿을 만들었다. 사치의 상징이었던 밀크 초콜릿이 저렴하게 판매되기 시작하자 허쉬는 큰 인기를 끌었다.
허쉬는 사치품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오늘, 와인한잔'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2000년대 중반부터 대형마트를 비롯해 와인 전문점에서 만원대 와인이 등장하면서 와인의 대중화는 시작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에서의 소비가 늘어났을 뿐, 외식문화에서의 소비는 크게 늘지 못했다. 여전히 특별한 날 즐기는 술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 와인한잔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와인한잔은 허쉬처럼 부유층의 전유물로만 인식되던 '와인'을 대중화시켰다. 그들은 현시대 소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라는 어법을 사용해 브랜드를 어필한다. 그들이 하는 위로 중에는 허쉬처럼 '저렴한 가격'도 포함된다.
사실 유럽을 가보면 마트에 1유로(한화 1,300원) 대의 와인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듯 야외에서도 가볍게 와인을 즐긴다. 유통과정 등 이슈를 배제하고 와인을 대하는 인식이나 문화만을 보고 이야기하자면, 그들에게 와인은 사치품이 아니다. 일상에 녹아있는 음료 중 하나다. 물론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와인을 교양이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소주처럼 제조방식과 재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소주라 불리는 술은 국민 주류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와인한잔은 우리 문화에도 와인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를 소개한 것 아닐까 한다.
게다가 이들은 와인은 저가로 제공하지만 고객 경험까지 저렴하게 만들지 않았다. 일상을 위로해준다는 콘셉트와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를 통해 그래도 남아있는 고급 주류를 저렴하게 소비한다는 죄책감(?)을 덜어주어 소비의 당위성을 부여했다.
저가로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는 브랜드는 대부분 고객 경험까지 저렴하게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윤이 크게 남지 않아서 다른 부분을 포기한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저렴한 것을 소비하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보이는 소비가 많아지면서 사용하는 것을 숨기고 싶은 브랜드는 당연히 홍보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내 브랜드는 소비자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