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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니 Jul 23. 2020

인도에서 37시간 버스타기 (꾀죄죄는 선택 아닌 필수)

현실판 김종욱 찾기 Ep.2



"오빠, 전 바라나시가 너무 가고 싶어요."

"조드푸르에서 1박을 더 하는 건 어때?"


종이에 흐트러진 여행 일정을 급히 다시 짜던 우리




시작되었다.

오빠와  둘만의 인도 여행이.

결심을 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함께 생활하며 내 눈으로 본 오빠라는 사람을 믿었고, 오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무엇보다 평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인도 여행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13박 14일

우리들의 여행 기간이다.


첫 여행지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37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조드푸르.

보통 배낭여행객에게 버스라고 하면 누워서 가는 (일명 슬리핑 버스) 버스를 떠올리겠지?


우리는 틀어진 계획 속에 (3명이었다가 2명으로 인원 변경) 부랴부랴 모든 교통편을 재예약하느라 슬리핑 버스는 꿈도 꾸지 못했다.

모두가 아는 일반 버스. 우등도 아닌 불편 하디 불편한 일반 버스(여기선 세미 버스라 부른다.)를 타야만 했다.


캐리어 한 개, 배낭 두 개.

우리의 짐은 이게 전부.

버스에 짐들을 싣고 우리 둘은 밤 버스를 타고 떠났다.





남자와 단 둘이 하는 첫 여행.

그것도 인도에서 이렇게 우연으로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운명으로) 시작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버스에 올라탄 지 1시간이나 지났을까.


가 먼저 입을 뗐다.


오빠 우리 사귈까요?





뭐가 그렇게도 당당한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얼마간의 정적이 있은 후,

오빠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11:58 PM"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아직 12시 안 지났으니 4월 8일, 오늘이 1일이네.

연인이 된 우리는 버스에서 인도 여행의 1일 차를 보냈다.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37시간의 버스 여행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남자 친구와의 첫 데이트. 첫 여행.

예쁘게만 보이고 싶은 여자의 속을 버스는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37시간 동안 버스는 계속 달렸고

양치할 시간도, 세수할 시간도 우리에겐 없었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풀메이크업에 새로 산 원피스를 입어도 모자를 마당에 남자 친구와의 첫 데이트가 꾀죄죄한 츄리닝,

36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떡진 머리,

세수도, 양치도 하지 못하고 이어진다는 게?



태어나서 가장 지저분한 상태, 다시는 오지 않을 꾀죄죄한 나의 모습을 본 첫 상대가 남자 친구라니.



헐 거 벗은 기분이기도 하면서, 마냥 부끄럽고 싫지만은 않았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편안해졌다. 



허리를 꼿꼿이 새운 채 새근새근 쪽잠을 자고, 가끔은 서로 머리가 부딪치기도 하고, 자다 깨 배가 고파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내 먹던 그 시간들이.



고양이 세수를 하기 위해 잠시 버스에서 내린 나 (오빠와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아 나도 몰래 헤벌레)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서로에게도 편해졌다. 




헐 거 벗은듯한 외모에 서로 눈곱을 떼어 주기도 하고 물티슈를 나눠 가지며 손을 닦고,

챙겨 온 수건으로 고양이 세수도 하고.





적당히 붙어 있는 좌석. 적당히 어두운 조명
 버스 안은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하는데에 충분했다.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던 시간들, 서로에게 반하게 된 그 순간, 이상형,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앞으로의 계획, 인생에서 소중한 것


우리는 가볍고도 무거운, 거짓 없는 우리 의 이야기를 정말 오랜 시간 나눌 수 있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라고 했던가.


는 수많은 여행지 중 가장 좋았던 곳은 단연 인도.

그중에서도 세미 버스에서의 37시간이라 단언할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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