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질이 좋은 커피.
여름이 되면 따뜻한 커피는 구미가 당기지 않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스로 마시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근래 마신 아이스 드립 커피들은 대부분 아쉽다. 얼음이 금세 녹아 물맛이 두드러진 향미다. 캐릭터가 사라진 느낌에 자주 가던 카페도 걸음이 뜸해진다.
두 해전 필름 카메라 모임으로 알게 된 '온더바'에 들렀다. 그동안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는데 여전히 기억해주신 사장님에 반가움을 느낀다. 추천받은 커피는 파나마 게이샤. 첫 모금부터 명확한 캐릭터가 느껴진다. 카카오닙스 혹은 사탕수수 같은 당미. 후미에 딸려오는 베리 같은 산미가 찌는 더위에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산화되지 않고 마시는 내내 이어지는 향미가 인상적이다. 얼음의 빙질이 좋다. 쉽게 녹지 않는 단단함에서 맛의 변화가 적고 시원함만 남는다. 이거다, 내가 그동안 커피에 대해 아쉬움을 남긴 게. 물맛에 지지 않고 뚜렷한 맛을 드러내는 커피를 바랐다 늘.
에스프레소는 다크한 베이스여서 미리 설탕을 넣고 내려주셨다. 충분히 타격감이 있고 후미에 텁텁하게 올라오지 않는다. 이후에도 클린컵이 두드러진 커피와 자체 연구 중인 배럴 에이징 커피도 맛보게 해 주셨다. 총 넉 자니 커피를 마셨지만 하나하나 기억에 남을 만큼 캐릭터가 확고했다.
정식으로 판매하는 커피는 아니지만 배럴 에이징 커피는 정말 위스키가 내뿜는 풍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장님은 커피의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고 오크통의 향만이 두드러져 나름 실패하고 하셨지만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더운 여름에 단단한 빙질의 아이스커피는 반갑다. 얼음만큼이나 단단한 바리스타의 손도 이곳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