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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민 Sep 08. 2019

음악으로 도피하기

가끔은 그래도 돼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오늘은 딱 그 표현이 맞겠다. 태풍 링링의 여파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바깥에 나가면 머리칼이 앞뒤로 정신없이 휘날려 야무지게 머리칼을 귀에 꽂지 않고서는 앞이 안 보여 똑바로 걸을 수가 없다. 보도블록 여기저기 부러진 가로수 가지들은 널브러져 있고 연약하게 붙어있던 전단지들은 모조리 펄럭이며 휘날린다. 그 사이로 대각선으로 쏟아부어지는 빗줄기들. 좌우로 흔들리는 가로수들 사이로 옷깃을 꽉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흩날리거나 널브러지지 않고 유일하게 꼿꼿하게 서 있는 모양은 안쓰럽고 비틀거리는 걸음은 우습다.

조금만 있으면 삽시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까맣게 뒤덮일 듯하다. 회색빛 하늘 사이로 불빛이 반짝. 그리고 몇 초 뒤 쾅! 천둥번개가 곧 몰아닥칠 하늘 밑에서, 나는 노란불 신호쯤은 가뿐히 무시하는 버스 아저씨를 만난 행운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에 번갯불처럼 집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빗방울 들어올까 꼭꼭 닫아두었던 창문인데, 집에 오니 왠지 살짝 열어두고만 싶다. 빗방울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적절 리듬을 때리는, 드럼 소리 피아노 소리 뚱땅거리는 재즈를 스피커로 튼다. 데이브 브루벡 아저씨나 테디 윌슨 아저씨처럼 음악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오래된 이들의 소리에는 바깥에 몰아치는 폭풍우를 잊게 할 만큼의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이 있다. 못 믿으시겠다면 테디 윌슨 트리오의 someone to watch over me를 한 곡 들어보시길. 노래 하나 들었을 뿐인데 바깥의 난리가 잊히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바깥이 난리인 건 하루 이틀이 아닐 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흩날리고 흩뿌려지고 나뒹구는 것 같은 느낌은 우리 삶에서 아주 가끔씩 반드시 있는 일이다. 그때마다 그 난리들과 나 사이에 벽을 두어 어지러운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좋은 방법이 음악을 듣는 일이다. 이어폰 끝에 달린 둥그런 고무가 나의 귓구멍을 꼭 막아 줄 때 바깥의 '난리 사운드'는 데시벨이 아주 작은 웅얼거림으로 바뀐다. 약간의 소음이 느껴지는 상태에서 모두가 잘 아는 삼각형 모양 재생 버튼을 누르면! 드디어 내가 선택한 음악의 멜로디가 귓구멍 안쪽으로 조금씩 흘러들어 바깥의 일들에 눈을 감을 수 있다.

태풍 같은 불안이든 불같은 분노든 천둥 같은 공포든.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난리들을 겪고 있겠지만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이어폰을 꽂고 그 선을 따라 음악을 귀에 흘려보내는 것. 피아노를 따뜻하게 치는 데이브 브루벡 아저씨의 노래를 듣고 있는 김에 이렇게 외친다. "와라 태풍아! 몰아쳐라 세상아! 재즈는, 악은 내 비장의 무기다!" 


니 설마, 먹구름이 내 목소릴 들었나? 폭풍우가 금세 잠잠해진다.


https://youtu.be/zYsDWs-pp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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