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10년 동안 품었던 꿈이다. 2년 간의 언론고시 기간 끝에 최종 합격했다. 너무 아름다운 꿈이었던 걸까. 합격의 기쁨은 찰나였다. 나는 꿈을 이룬 것이 아니라 꿈속에 잠겨있었다. 수면 위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없는 채.
입사해서야 눈으로 본 현실은 정말 달랐다. 치열했고 또 처참했다. 환상적이기만 했던 꿈은 서서히 조각났다. 내가 사랑했던 일은 나를 아프게 했다. 장례식장을 돌며 낯선 이들의 영정사진을 수십 장 볼 때, 공장에서 일하다 다리 한쪽을 잃은 이의 아내가 외상센터 수술실 앞에 주저앉아 우는 모습을 볼 때, 어른들 탓에 바닷속에 잠긴 200여 명의 아이들의 명예 졸업식에서 더 이상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한 그들의 부모를 볼 때. 슬픔이 장악한 공기를 헤치고 들어가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원하는 대답을 유도해야 할 때마다 나는, 어떤 걸음걸이로 다가가 어떤 목소리로 첫마디를 내뱉을지, 어떤 리드 문장으로 어떤 장면을 강조하고 어떤 메세지를 전달할지까지 고민해야 했다. 고민의 매 순간마다 나는 갈등했고 언제나 똑같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결국 그만뒀다. 꿈과 다른 현실이 나를 잠식할까 두려웠다. 도망치듯 끝냈다. 고작 4개월 맛본 기자 생활이 혹독하기 그지없었지만, 퇴사한 지 5개월인 지금까지 난 10년 동안 사랑한 꿈을 버린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정말이지 사랑한 만큼, 딱 그 사랑의 크기만큼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브런치에 처음 연재한 '취준부터 퇴사까지' 시리즈 출간에 그토록 목맸던 것도 어쩌면 지난 사랑을 하루빨리 잊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처음 기자를 꿈꿨던 이유 중에서 아주 큰 부분 중 하나가, 몇십 년 뒤 기자 생활하며 쓴(기자를 계속했다면 시니어 기자가 돼서 썼을지도 모를) 칼럼들을 모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욕심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기자를 꿈꾸며 훗날 포부로 담아뒀던 책 출간을, 비록 독립출판이더라도 지금 당장 해버린다면 나는 기자가 아니어도 그 꿈을 이룬 셈이나 다름없으니까. 이제 더 이상 기자가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를 내 안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나는 꾸역꾸역 책을 내면서까지 억지로 기필코 만들어 냈다.
기자여야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여러 가지 일들. 예를 들면 책을 내는 일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과 글을 쓰는 일. 내가 기자를 해야만 했던 이유들을 하나 둘 다른 가능성들로 채워나간다. 기자여야 하는 이유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니 과거의 사랑에 얽매여 있는 내가 잠시 동안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지우개로 열심히 박박 문질러봐도 어쩐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팔이 아플 때까지 지워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한 때 사랑이 고통 없는 추억과 그리움이 되겠지. 그 날이 오길 기다리며 나는 오늘 또 사랑의 이유를 하나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