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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15. 2024

일본 수출규제가 삼성에 미친 영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지난 2019년 당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그해 7월 4일부터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제재를 시작했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절차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했다.

일본이 수출 제재한 소재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이었다. 이 가운데 PR과 에칭가스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라 일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수출 주력기업에게 타격을 입히려는 의도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PR은 일본이 약 90%를 점유하고 있어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 업체들의 생산 차질까지 우려됐다.

PR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펴 발라 빛을 받는 부분이 화학 변화를 일으켜 회로를 그리는 작업에 쓰인다. 이 소재가 없으면 반도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 일본 제재로 인한 수급 불안이 가장 큰 품목이기도 했다.

일본은 반도체 수출 규제를 통해 '가깝고도 먼 나라'란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FTA(자유무역협정)를 시작한 지 20주년이 됐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의외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현재까지도 일본과는 FTA를 맺지 않고 있다.

한국은 2004년 칠레와 처음 FTA(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이후 20년간 59개국과 협정을 맺어왔다. 첫 FTA를 체결한 2004년을 돌이켜보면 일본과의 FTA는 수출 제재의 핵심이었던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와도 상당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해는 일본이 처음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킨 해다.

수출 제재 당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캐나다, 체코, 덴마크, 핀란드, 그리스, 헝가리,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총 27개국이었다. 특이한 점은 한국을 뺀 나머지 26개국이 모두 유럽과 북·남미 등 서구권 국가들이란 사실이다.

이들 국가는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호주그룹(AG) 등 ‘4대 국제수출통제’ 체제에 가입하고, ‘캐치올(Catch-All)’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우방국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캐치올은 수출 금지 품목이 아니더라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 수출 당국이 해당 물자의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다. 한국은 2001년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 가입을 마쳤고, 2003년엔 캐치올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이 한국을 2004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킨 것도 이런 제도를 성실히 이행한 우방국에 대한 자연스러운 조치로 풀이된다. 당시 관련 부처 자료나 언론 보도 등 어디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켰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양국 간 관계에선 당연한 조치로 특별한 이슈가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서로 우방국이기 때문에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국과 일본 간 FTA도 논의됐지만 정치권은 물론 경제 전문가들도 국내 부품·소재 산업 타격과 기술 종속화 등을 이유로 FTA를 반대했다. 그리고 일본은 이들 소재·부품을 한국과의 무역 전쟁 무기로 적극 활용한 것이다.

반도체 생산은 '8대 공정'이라 불리는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 과정 중 하나라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공정 전체가 멈추게 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큰 위협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은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소재 물량 확보에 나서는 등 수출 규제 속에서도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동분서주했다. 사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은 초창기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건너왔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장을 석권했던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삼성에 자리를 내줬지만, 소재 분야에선 확고한 위치를 점해왔다.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과 맞물려 고순도를 요구하는 반도체 소재 등에선 대체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수출 규제 이후 우리나라에선 소재 국산화에 매진해 왔지만, 현재도 초고순도 제품은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삼성은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기술을 가진 미국 기업 인프리아(Inpria)에 투자하며 일본 외에서도 소재 수급을 위한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대표적인 소재 기업인 JSR은 2021년 5억 1400만 달러를 들여 인프라아를 인수하며 관련 소재 기술 지키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당시 국내 언론들은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성공해 우리나라가 더 이상 일본 소재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애국심 마케팅엔 성공했지만 '팩트'는 아니다.

3년여에 걸친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여파로 대만의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1위를 굳건히 했다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윤석열 정부 들어 일본과의 외교 정상화에 나섰고 2023년 4월 24일 0시를 기해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복원시키며 일본 수출 규제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지만, 반도체 산업 측면에선 안타깝게도 멀어져선 안 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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