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두려웠던 하루의 끝
파리의 밤은 반짝이는 에펠탑과 주황색 가로등,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어우러져 한없이 아름답다.
그 밤을 걸으면서 만끽할 수 있는 '파리 야행' 프로그램은 아내가 선택한 여행 스케줄이었다.
생루이섬에서 출발해 시테섬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에펠탑까지 이어지는 야행길에선 안내 가이드의 설명과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음악 등을 이어폰을 통해 들으며 걸을 수 있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해 4시간가량 이어지는 야행에선 가이드분이 주요 스폿에서 가족사진도 찍어줘 좋은 추억이 됐다.
영화 '비포선셋'에 첫 장면에 나왔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과 '라라랜드'에서 나온 파리의 재즈바 등을 지날 때는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문제는 어른들과 달리 파리에 대한 추억이나 영화 등을 본 적이 없는 우리 아이들은 4시간을 걸어가는 야행이 힘겨운 행군과 같았다는 점이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은 야행 내내 다리가 아프다며 벤치가 나올 때마다 앉아있기 바빴다. 결국 최종 목적지인 에펠탑까지 가지 못하고 알렉상드르 3세 자리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우리는 야행을 멈춰야 했다.
그런데 야행 일행과 헤어져 숙소로 가기 위한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구글맵에 나온 'Invalides'역으로 갔는데 숙소로 가는 RER C 노선 열차가 도착 예정시간이 '35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지하철 역 승강장에 내려왔을 때 시간이 밤 10시 30분 정도였는데, 서울이라면 열차가 끊어질 시간이 아니었지만 파리 지하철 막차가 언제인지 몰랐던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승강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가족 외에는 우리와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민자로 보이는 3~4명의 젊은 남자 무리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파리의 소매치가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고, 지하철 객차 안에서도 한국어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여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왜 열차가 지연되는지 찾아보니 파리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해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파업 중이라고 하니 '35분 후'라고 뜬 도착 예정시간도 과연 그때 열차가 올지 안 올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35분 후에 도착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밤 11시를 훌쩍 넘어버리게 되고, 외부에도 인적이 드물어 택시를 찾아다닐 자신도 없었다.
그때 바로 눈앞에서 어른 주먹보다 큰 살이 오른 쥐가 선로 사이를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나이가 50이 다 돼가는 성인 남자인 나도 그 순간엔 소름이 돋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역무원이 승강장을 순찰하면서 우리 가족 앞으로 지나갔고, 왜 여기 있냐고 물어봐 열차를 기다린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다. 그제야 다소 안심이 됐고 꼼짝하지 않고 승강장 벤치에 앉아 온 가족이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열차는 예정한 35분 후에 도착했고 파리에서 처음으로 느낀 공포의 시간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