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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pr 04. 2024

보통 사람 에세이 모음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에세이꾼들의 에세이는 좀 피하는 편이다. 내가 말하는 에세이꾼들은 이름만 들으면 아 그 사람 하고 알려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을 왜 피하느냐 하면, 글을 너무 잘 쓰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괴소리인가 싶지만 그런 분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끼고 싶은 감정보다는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짐짓 '보통사람인 척 연기하고 있지만 실은 엄청나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임을 내가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사람이 자신의 게으름이 어쩌고 운운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기에 불과하다. 그는 사실은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며 설령 스스로 정말 게으르다고 느낄지라도 그것은 그가 보통 사람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기준의 성실함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글을 읽으면서 저자를 게으르구나 하고 진심으로 깔깔 댈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와, 이런 굉장한 사람이 다 있나 보다는 그냥 이 사람도 나랑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은 사람의 이야기가 좋다. 음, 이 사람도 편의점에서 2+1 상품이 있으면 1개를 살 지 2개를 살 지 고민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안심한다. (참고로 나는 꼭 2개를 사게 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출판기획을 한다면 나는 정말, 진짜 '보통 사람'의 에세이를 모은 책을 내고 싶다. 문제는 그런 '진짜'들은 좀처럼 에세이를 쓸 생각을 안 한다는 거다. 그런 사람들을 억지로 설득하러 다니는 일은 무척 귀찮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설득해서 글을 쓰게 한다고 해서 쓰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보통 사람의 에세이라는 건 정말 유니콘 같은 환상 속의 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닐까?


그래도 그런 책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직장 상사가 안 쓰면 고과를 엉망으로 주겠다고 협박했다든지, 아이 초등학교 숙제로 반드시 제출했어야 했다든지 하는 식의) 여러 사정상 그런 에세이가 나왔고 그것을 책으로 모아서 출판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책을 사서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보통'에서 위안을 받고 싶다. 


사실 요즘 세상에는 온통 대단한 사람들 뿐이다. 유튜브를 보아도 그렇고 영화를 보아도 그렇고 소설을 보아도 그렇다. 이 사람은 이런이런 일을 해서 이곳에 나왔습니다, 대단하죠? 하고 소개한다. 물론 대단하다. 같은 24시간을 사는 게 맞나 싶을 만큼 대단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많고 무슨 이유에선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도 알겠으니 이제 좀 그만 떠들었으면 좋겠다. 솔직한 심정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마흔쯤 되어서 큰 병으로 수술도 하고, 어쩌다 사업이 망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느라 고생하고, 혼자 아이 둘을 돌보느라 다 불어터진 라면 그릇을 속상해 하며 바라보는 그냥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듣고 싶다. 에이, 그런 건 기획이 안돼. 그런 걸 누가 보고 싶겠어? 그런가? 그게 정말 사람들의 마음인가?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알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지만 적어도 여기 한 명의 독자는 있다. 


성장이나 성취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좌절과 실패는 잘 안다. 나는 무수한 좌절과 실패, 슬픔과 절망을 경험했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을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살아가련다. 실패하면 실패한 대로 잘 안 풀리면 잘 안풀리는 대로 툴툴 대며 살겠다. 내가 바란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아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정신을 팔렸는지 집에 가는 버스 번호를 착각해 한참을 돌아가게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술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는데 암에 걸리는 게 인생이라고. 


아주 가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내가 암에 걸렸다고 하자, 자신의 병력을 공유해준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겉보기에는 늘 건강하고 씩씩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아팠으리라고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세상이 한꺼풀 벗겨진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을 뿐인데 나는 그가 나를 꼭 끌어안아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특별한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나는 위로를 받았다. 요즘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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