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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 Mar 18. 2024

Dawn Cloud Blue

#3E4B98

여명이 다가오는 새벽 바다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곳은 제주도 협재였습니다. 태풍으로 창이 거칠게 흔들렸던 밤이 지나고, 구름이 열어준 하늘 사이로 서서히 물들던 푸름을 보았습니다. 잦아든 바람 소리에 잠시 움추린 몸을 일으켜 파란 조각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안도감 속에 잠이 들었습니다.


심한 난시 덕에 어릴 적부터 세상은 흐릿하고 굴절되어 있었습니다. 고르지 못한 각막을 통과한 빛은 산란하여 흐트러진 형상을 시신경에 전달하였습니다. 그렇게 풍경을 흐릿하게 흘려보내며 지냈습니다. 때때로 조금 더 명확한 인지가 필요할때면 실눈을 뜨고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최대한 줄여 지긋이 봤습니다. 그래야만 보였습니다. 지긋하게, 시리게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중국에 도착한 옛 선교사가 했던 말 처럼 잔상은 기억의 궁전 어딘가에 자신의 위치에 또아리를 틉니다. 나의 경우 대부분 그들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시시콜콜한 사건들을 담고 있지 못합니다. 색의 번짐으로 쌓인 이미지는 꺼내보는 날의 해석이 입혀지고, 꺼내보는 나에게 잔잔히 그날의 감각을 전해줍니다. 선명하지 않기에 두 시간은 흐리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 감각을 환기시킵니다.


기억에 남겨진 흐린 풍경의 잔상을 꺼내 봅니다. 그날 안도감을 주었던 푸름을 꺼내봅니다. 남겨진 흐릿함에 오늘의 감상을 담아 보며 '새벽 구름 파랑'을 소개합니다.



색상명 : 새벽 구름 파랑 / Dawn Cloud Blue

재료 : 장지에 유화

위치 : 서울 중구 을지로 157 대림상가 9층, 961호 포켓테일즈

날짜 : 2024.03.06

작가 : 윤혜진

전시 : 시린 눈의 옆면


매일 같이 저녁이면 렌즈를 빼고 안경을 끼기 전 뿌연 색 면들로 이루어진 풍경을 본다. 가깝고 멀거나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거나 구분 없이 동등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시공간의 세계에 머무는 듯한 틈 속에 있는 것 같다. 식별할 수 없는 정보로 이루어진 암호와 같은 풍경 너머에 작가가 숨겨 놓은 대상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그 틈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떤 감정이 깃든 것인지 속속들이 알길은 없으나 그 풍경은 회화라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존재했던, 영원히 존재하게 하고 싶은 대상을 흐린 눈으로 바라본 풍경으로 작가는 이를 남긴다. 마치 슬픈 전설이 숨겨진 보석처럼.

-전시 서문 중 발췌-

글, 김채송 포켓테일즈 디렉터


방해 (Normal Dawn), 16 × 27.3 cm, 장지에 유화, 2024



시린 눈의 옆면 전시 전경, 포켓테일즈, 2024




시린 눈의 옆면 전시 핸드 아웃, 포켓테일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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