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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대상'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지하고 이해한 '감각'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감각은 '어떠한 느낌'으로 남습니다.
유리가 된 흙엔 그날 마주했던 '환희'가 담깁니다. 무형의 느낌은 형태라는 옷을 입은 덕분에 3차원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유한한 인간의 감정은 도자가 되었기에 시간을 넘어서게 됩니다. 개인적이었던 인간의 감정은 도자가 되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환희'는 기록되고 나눠질 수 있게 됩니다.
숨이 차올랐던 산행. 완만해 보였던 능선은 한걸음 딛는 촉감엔 가파르게 느껴집니다. 형형 색색의 식물과 새소리, 바람이 기억에 물듭니다. 함께 걷는 이와 의지하며 돕고, 때론 가벼운 농으로 웃음이 오갑니다. 잎새를 통해 비치는 볕은 따뜻하고, 귓가를 흐르는 땀은 바람을 만나 선선합니다. 단단한 경사는 더 부드러운 감각을 기억하게 합니다.
산봉우리에 선홍빛 태양에 내려앉습니다. 낮동안 지면을 달구었던 태양은 부드러운 붉음으로 하늘을 물들입니다. 산을 타고 또르르 굴러 어딘가로 튀어갈 듯 아찔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유리가 된 작은 산 정상엔 연선홍 태양이 흔들흔들 자리 잡습니다.
오늘 어떤 풍경의 잔상이 남으셨나요. 어떤 것은 연하게 흔들리는 흐림으로, 어떤 것은 선명하게 화려한 선명함으로 기억되었을 것 같습니다. 잠깐 눈을 감고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풍경을 다시 그려보길 바라며, '행복'이 함께 했던 일몰이 떠오르길 바라며 '창백한 일몰 선홍'을 소개합니다.
색상명 : 창백한 일몰 선홍 / Pale sunset Violet Red
재료 : 석기에 시유, 와이어와 혼방사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5다길 18 3층 PS CENTER
날짜 : 2024.04.20
작가 : 권지영
전시 : Sensescape
《Sensescape》는 대상(풍경)에 대해 아주 내밀하게 감정적이거나, 표제적으로 접근한다. 실재하는 풍경이 작가의 피부로 감각되고 내재적으로 구체화되어 표출되는 과정은 참 낭만적이다. 낭만주의의 대표 풍경화가 프리드리히는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본래 풍경은 주체와 객체의 인식적 공간의 분할이 가능해진 연후에 주체와 분리된 물리적 공간이나 상황을 말하지만, 전시는 풍경이 생겨난 기원은 은폐되고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면서 드러난 인식이나 미술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담아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풍경을 마주했을 때 도리어 결과가 원인이 되는 내적 전도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경치, 내면의 감수성이 펼쳐진다.
글, 전시 서문 중 발췌
자연으로부터 온 흙을 빚어 만들어진 구, 거기서 피어오르는 실은 햇빛이 빛나는 시간과 어느 날 지고 있는 석양의 행복을 담아내기도 하다가 때때로 커다란 기쁨이 피어나는 것을 표현한다. 마치 꽃이 심겨진 화분처럼 보이는 이 작품들은 도화지처럼 사용된 둥근 도자 위로 드러난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하고, 또 다른 하나의 풍경을 자아낸다.
글, Sense Scape 리플릿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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