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받는 삶

by 꽃뜰


노트북을 챙겨 남편이 일어날 즈음 집을 나선다. 왜냐하면 남편은 늦잠을 즐기고 카페는 그즈음 문을 열고 남편이 일어나면 집중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가까우니까 "이따 점심때 봐~ "도 되고 "아무 때고 내가 필요하면 불러~"도 된다. 그냥 무심코 흘러갈 토요일 오전이 이렇게 박차고 카페로 가면 특별해진다. 하하 그래서 종종 난 카페로 간다. 헉. 그런데 문을 닫았다. 내가 너무 일찍 온 걸까? 분명 9시 이전에 연다고 했는데 지금 9시 10분이다. 아쉬우면 젤 먼저 찾는 남편에게 전화한다.


여보, 문을 닫았네. 어떡하까?

그 근처 산이라도 올라갔다 가봐.

오케이. 아니 그런데 다른 카페로 갈까? 지난번 갔던 그곳?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는 문 닫은 이 곳을 두고 다른 곳을 갈까 묻는다. 그러나 언제나 초지일관 변함이 없는 그는 그냥 기다리란다. 그럼 그렇지. 카페고 마트고 미용실이고 어디가 되었건 한번 단골은 영원한 단골인 그가 덜렁 다른 곳으로 가라 할 리가 없지. 그래서 난 바로 근처에 있는 산으로 간다. 우리 동네는 그렇게 사방에 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 아주 잠깐이라도 산 길을 걷는 건 참 상쾌하다. 나무들이 촉촉이 이슬에 젖어있다. 더 산속 깊이 가고 싶지만 카페로 발길을 돌린다. 헉. 아직도? 이미 9시 반이 넘어가는데 문은 여전히 꽝 닫혀있다. 웬일일까? 남편에게 다시 전화한다.


여보~ 문을 아직도 안 열었어. 어떡하지?

집으로 와. 이미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시작되었다. 같이 보자.

그래도 칼을 뽑았는데 그대로 갈 수는 없지.

무얼. 무 한 조각만 베고 와.


하하 쓸데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며 기다리지만 역시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 집으로 가자.' 카페에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19층인 우리 집에서도 내려다 보이는 바로 아파트 앞 카페.


아, 누군가 들어간다.


창 밖으로 길게 머리를 빼고 나를 보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그래? 가던 발길을 휙 돌려 카페로 두두두두 달려간다. 그래도 칼을 뽑았는데!


나, 갔다 올게~


카페 안에 들어가니 오홋 카운터에 오늘은 다른 분. 언제나 계시던 여사장님이 아니고 남자분이다. 젊은이들 속에서 나도 그녀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기에 툭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는데 그 여사장님의 남편이란다. 9시부터 와서 기다렸다는 나의 말에 본래 그때 문을 여는 데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늦었단다. 내가 첫 손님이다. 커다란 카페 맨 끝 벽에 딱 달라붙은 자리로 간다. 오래 껌딱지처럼 붙어있기에 안전한 자리다. 넓은 집을 놔두고 왜 그 불편한 카페에 가는지 남편은 이해를 못한다. 난 학창 시절에도 도서관 형으로 일단 집에서 나와 도서관에 가면 공부에 성공했다. 그러나 집에 있으면 이것저것 참견하다 멍 때리다 딴짓하다 공부에 실패했다. 마찬가지다. 집은 편하고 넓고 쾌적하지만 카페에서의 집중도와는 비교가 안된다. 아, 얼마나 괜찮은가.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들의 소곤소곤 대화 소리. 그 한쪽 끝에서 다다다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린다. 좋은 집 놔두고 가는 게 잘 이해는 안 된다면서도 글 쓰러 카페에 가는 나를 남편은 적극 응원해준다. 거기서 난 옛날 학창 시절로 돌아가 마냥 글을 쓴다. 한창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데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


옥수수 갖다 줄까?


압력솥에 삶았는데 너무 맛있다며 갖다 줄까 묻는 것이다. 세상에. 영악한 나는 카페에서의 글쓰기 시간을 늘리기 위해 그에게 은근슬쩍 부엌일을 전수하고 있다. 밥하는 법, 된장찌개 만드는 법, 김치찌개 만드는 법. 거기다 얼마 전 옥수수 철을 맞아 옥수수 쉽게 삶는 법도 알려주었다. 압력솥에 밥하듯 이렇게 하면 쉽게 돼. 하지만 정말 그걸 홀로 삶을 줄이야. 게다가 나에게 가져다 줄 생각까지 할 줄이야. 다정한 그의 전화에 문득 다가오는 말, 괜찮은 노후! 그래, 이렇게 응원받는 삶이라면 '괜찮은 노후'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