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선 방송국이 최고야. 방송국 가자.
Y는 고리타분하게 학보사가 웬 말이냐며 나를 방송국으로 잡아끈다. 대학 들어가 얼마 안돼 교내 방송국, 학보사, 영어신문사 세 곳의 시험이 동시에 치러지는 날 매우 복잡한 계단참에서 나는 Y와 딱 마주친다. 앗, 너? 혹시? 그치. 우리 불광동 과외. 서울 덕수 국민학교 동창인 우리는 즉시 서로를 알아본다. 학보사 간다니까 같이 방송국 시험 보잔다. 팔랑팔랑 팔랑귀 나는 그래. 가잣. 발길을 휙 돌려 그와 함께 방송국으로 간다. 경쟁이 치열했던 그곳에 합격한다. 그렇게 나의 인생에서 무언가 가슴 설레는 글쓰기는 살짝 빗나간다. 신문기자를 꿈꾸며 제대로 가다 왜 발길을 돌렸을까? 프로듀서는 전문 글 쓰기가 아니다. 음악을 선정하고 포맷을 짜는 게 더 주요 업무다. 난 사실 글이 쓰고 싶은데 내참.
아, 너도 빨강머리 앤 읽었구나?
중학교에 들어가 빨강머리 앤으로 단짝 친구가 된 K와 나는 본격 문학소녀가 된다. 함께 문학반에 들고, 세계명작을 읽어나가고, 서로 글을 써주고 낭독하는 둘만의 문학의 밤도 연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그게 바로 내가 잘하는 거며 내 적성이라고는 생각 못한다. 나의 직업으로는 더더욱 네버. 영어를 해야 한다가 머릿속에 쾅! 박혀있었으니 영문학과만이 내길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일기를 쓰고 그걸 다시 읽으며 재밌어하면서도 나의 갈 길을 국문과라든가 글쓰기라든가 그런 쪽으로는 절대 생각 못한다.
여고시절엔 또 애들이 몰리는 노래선교단에 응시해 합격한다. 내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노래와 신앙훈련으로 여고시절을 보낸다. 가끔 문학반 친구들이 교내신문을 만들어 나누어줄 때는 그게 너무 부럽지만 이미 한번 정해진 길을 바꿀 엄두조차 못 내고 3년을 보낸다. 그렇게 글쓰기는 완전히 내게서 떠난다. 그래도 매 해 일기장은 한 권씩 남긴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팀에 취직해 그룹 사보를 만든다. 드디어 글의 세계로 들어가는가? 그런데 헉. 그때 대기업들에선 사내 방송을 시작했으니 우리 그룹에서도 사내방송을 시작하는데 홍보팀에 그 과제가 떨어진다. 대학 방송국 피디 출신이라는 이유로 내가 차출되어 방송을 맡게 된다. 글은 외부 유명인사에게 받아 회사 밖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현직 아나운서와 함께 일주일치 사내방송용 카세트를 제작하는 업무다. 내가 쓰는 글이라고 해봐야 중간중간 연결해주는 짧은 멘트뿐. 그렇게 본격 글쓰기와는 또 멀어진다.
세월은 흘러 흘러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전업주부만 하다 그 애들이 다 커갈 무렵 아이 러브스쿨로 갑자기 몇십 년 전 서울 덕수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글쓰기는 다시 전면에 나타난다. 속속 모여드는 친구들에게 옛날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니 무척 좋아한다. 덩달아 흥이 나 더욱 열심히 글을 쓰지만 동창애들 몇이 볼뿐이다. 아니 우리 동창들은 많아 백 명 이상이다. 그래도 그게 끝이다.
우와~ 조회 수가 십이만 명 육박이야.
프랑스 파리에서 직장에 다니는 작은 아들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길게 휴가를 나온다. 오랜만에 집에 와 뒹굴뒹굴 휴가를 즐기던 아들은 글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브런치를 강추한다. 그 애 덕에 알게 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올린 글이 십이만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읽히기도 한다. 우아아아 무지막지 올라가는 조횟수를 보는 그 짜릿함이라니. 내게서 항상 비켜갔지만 절대 놓을 수 없었던 글쓰기. 그래 나는 글을 쓴다. 내가 느끼는 괜찮은 노후 하하 글 쓰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