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똑띠 Nov 26. 2023

괜찮지 않다(不安)

[선생님의 목소리_미공개작 3] 교육에 관한 마지막 에세이.

나의 할머니는 요즈음 어린 아기가 되어가는 중이다.


점점 몸이 편치 않으셔 바깥 생활을 하지 않으신 지 오래라, 할머니의 얼굴은 아가야마냥 뽀오얗게 되셨다. 먹는 일도 점차 예전 같지 않으셔 음식을 가리시다 보니 몸도 점점 아가야마냥 작아진다. 어린아이들처럼 옹알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기도 하고.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유치원도 열심히 다니신다.


가끔은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 같기도 하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전에 없이 왕성하시다. 숟가락을 놓고도 "이건 뭐인고?", 엄마를 보고서는 "아줌마는 누군고?" 하시기도 한다. 혼자 있기 무서운 아이마냥 저 멀리 서울 사는 아들을 찾기도 하고.


그래도 영영 아이가 되기엔 아직 시간이 남으셨나, 오랜만에 보는 손주는 용케 단박에 알아보시고 이름도 불러주신다. 그러면 나는 기분이 참 좋다.


뭘 보고 계신 건지, 포대기에 싸인 아가야마냥 허공을 보시면서도, 뽀얘진 손으로 내 손을 힘 있게 잡으시고선 또박또박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 진이 왔는가?"

"혼자 왔는가?"

"얼른 새끼를 낳아야지."

"봄에 낳으면 좋아, 봄에. 따뜻한 봄에."


내가 진이인 것도 아시고, 결혼한 일도 아셔서 기분이 좋다. 그런 할머니가 어제는 다시 창원으로 돌아가려 집을 나서는 내 손을 잡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걱정하면서 살어?"


허공을 보는 할머니의 말씀을, 그저 운전 조심하라는 얘기로만 알아듣는 네네 하고서 나섰다.


-


나는 원체 아둔하여 남들은 한 번에 알아들을 얘기도, 곱씹고 곱씹어야 그제서 아는 편이다. 창원 집으로 돌아가는 두 시간의 운전길 동안, "걱정하며 살라"는 할머니의 말을 나는 곱씹고 곱씹어야 했다. 더없이 깨끗한 겨울 저녁 하늘과 그 아래로 스미는 주황 노을을 보며 말이다.


-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 근처로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학교 뒤편의 야트막한 동산을 넘어, 커다란 아파트 단지 두 개가 우리 학교를 둘러싸고 높이 올라가는 중이다.


아침 수업이 없는 날이면 일찍 학교에 출근하여 근처 산책을 부러 하는데, 학교 뒤편으로 하얗게 올라가는 아파트가 줄줄이 보인다.


10여 년 전에도 근처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다시 10년 전에도 근처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두세 개 들어섰던 동네다.


시내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의 신형 아파트 단지. 초중고등학교가 밀집된 곳. 학교는 원래 자리를 지켰을 뿐인데, 주변으로 소위 '신형' 그리고 '고급'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섰다.


수십 년을 제자리에 있었을 따름인 주변 학교들은 그렇게 '득'을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우리 학교였다. 그리고 다시 10년쯤 지나.


새로운 아파트가 또다시 우르르 쏟아지고 있다.


-


그렇다고 이 지역의 균형발전이 눈부신가 하면, 그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소위 '잘 나가던' 고등학교는 근방의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유지되지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다. 다들 이러한 새로 건설된 동네로 옮겨간 듯하다.


세태가 이렇다보니 줄어드는 학생수와 그로 인한 학교의 존재 위기를 극복하려 전에 없던 노력을 기울이는 학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먼 곳까지 학교 홍보를 자발적으로 다니기 시작하고, 스쿨버스를 운영하고. 교육과정을 바꾸고, 시설을 보수하고.


누구랄 것 없이 먼저 나서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이를 사방에 알리는, 요즘 말로 '셀프 브랜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주변의 사정을 알게 되고서, 나는 언젠가 학교의 관리자에게 우리도 이런 일들을 좀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 하였다.


아주 멀리는 아니더라도, 고민이 될 정도의 등교거리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스쿨버스도 마련해 보고, 학교 홍보를 위해 팸플릿도 만들어 배부하고, 좀 그러자고.


일거리를 우선 만들고 그에 맞추어 다시 재정비를 좀 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다 싶었다. 건강한 압박이랄까.


코비 브라이언트는 생전에 "나는 계약을 먼저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라고 하였다. 학교에서 뭘 자랑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할 일을 만들고 자랑거리를 만들어가자는 쪽이었다.


관리자가 나의 제안을 듣고서 하는 말은 이랬다.


"우리 학교는 그런 걱정할 일 없다. 우리 학교는 (학교의) 위치가 좋아서, (학생수가) 미달 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에,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언젠가 읽은 '장횡거'의 말이 생각난 것이다.


"성인(聖人)이 생각과 우환(憂患) 없이 세상을 경륜한다면, 대체 그런 성인이 어디에 필요하겠는가?"


-


내가 심히 좋아하는 책으로 '격몽요결'이란 것이 있다. 조선 선비 율곡 이이가 제자들에게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어놓은 책이다.


그 책의 첫머리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적혀있다. 그것은 바로 입지(立志). 의지를 세우는 것이다.


무슨 의지를 말하는가? 의사가 되겠다는 의지? 서울대 가겠다는 의지? 돈을 벌겠다는 의지?


율곡 이이는 이에 답하기를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의지다."


고 하였다. 훌륭한 제자는 하나를 들어 열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처럼 아둔한 사람은 율곡의 말에서 하나를 알기는 커녕 하나를 또 묻고 싶은 용기를 내야한다.


"그러면… 성인(聖人)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물론 내가 율곡에게 직접 물은 것이 아니기에 율곡의 뾰족한 답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장횡거가 그를 대신해 답을 미리 남겨주었다.


"걱정(憂患)하는 사람이다."



-


여기서, 장횡거가 말한 걱정(憂患)은 "나 하나 잘 되고자 하는 걱정"이 아니다. 오직 자신만의 안위를 위한 걱정은 우환으로 치지 않는다.


"어디 내가 나 좋자고 이러는 거야?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지!"라는 식의 걱정도 우환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런 분들에게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넘겨드리고 싶다.


"바라는 게 안 됐을 때 괴로우면, 그거는 다~ 자기 욕심입니다."


-


공자님은 말씀하시기를


"덕은 없으면서 지위가 높으면, 지혜는 적으면서 하고픈 것이 크면, 힘은 약하면서 책임이 무거우면 어찌 재앙이 이르지 않고 배기겠는가?"


하셨다.


어쩌면 우리가 숱하게 들어온 덕과 지혜와 힘이라는 건 진실로 남을 위한 걱정(憂患)에 다름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나 자신의 걱정이 동시에 남을 위한 걱정이 되는 것. 사욕(私慾)을 공욕(公慾)으로 여기고, 공리(公利)를 사리(私利)라 여기는 마음. 이러한 마음이 성인의 마음이고, 이런 마음을 성실히 하면 그것이 성인이지 뭐가 달리 있겠나.


그런데 남을 위한 걱정이라는 것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서 걱정한다."


라는 노파심. 이것이 남을 위한 걱정의 단초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주일도 불사하고 공부에 매진하는 아이를 보며, 허기지지나 않을까 싶은 부모님의 노파심. 좋은 신발에 가벼운 가방을 아이에게 입히고서도, 저러다 계단 하나 헛디디지 않을까 하고 지켜보는 부모님의 노파심. 무사고 운전 안전 운전하는 손주를 알면서도, 운전 단디 하라는 할머니의 노파심. 그런 것들이 결국 남을 위한 걱정이지 달리 무어겠나?


학교 뒷동산을 뚫고 올라오는 새하얀 아파트들을 보며, 누구는 저 많은 아파트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찰 것이니 학교를 유지하는 데는 큰 무리 없겠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그런 생각을 가진이의 높은 지위에 불안하다.


사람은 눈이 두 개고 귀도 두 개고 입은 하나니, 사람 수의 다섯 배나 많은 눈과 귀와 입이 모이는 것인데. 어찌 그 수많은 눈과 귀와 입들 사이에 둘러싸이고도 겁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최 연륜이 적고 아둔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느 먼 경지로만 느껴진다.


-


"걱정하면서 살어?"


여러분은 할머니의 가벼운 한 마디를 아둔한 내가 과도한 무거움으로 대한다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 생각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나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걱정'하며 운전을 더욱 조심하였고 밤길 고속도로에 위험 하나 없이 집으로 잘 도착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할머니의 무거운 말씀 또한 사실이다.


부처님이 "어린아이와 같이 돼라"라고 말씀하셨지 않나. 몸소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할머니의 말씀 만큼 순수한 것이 있을까. "걱정하며 살라"는 할머니의 걱정에 나는 두 시간의 밤길 운전이 행복했다. 차에 올라타기 전의 나와, 차에서 내린 나는 다른 사람이 된 듯하였다.


마침 부처님이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공자님도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고 하셨더랬다.


처음 이 말을 접했던 때에 나는, 타인의 관계를 왜 ‘해롭고’, ‘원하지 않는’ "부정적 마음“을 단초로 하였을까 싶었더랬다.


이제 나는 얼핏 알 듯도 하다. 성인(聖人)은 걱정하는 사람이라, 혹시 나에게 좋다는 이유로 남에게 권함이 '억지'가 될까 싶은 노파심에, 우선 조심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두심이 아니었을까.


-


걱정 없이 사는 삶을 누군들 추구하지 않으리오까마는, 그러고 싶다 하여 어디 걱정거리가 나만 피해 다닐까.


걱정거리를 피할 수 없다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들…


"걱정하면서 살어?"



[마침]


그리고


[교육 에세이 마침]




안녕하십니까?

브런치 필명 '김똑띠', 본명 '김동진' 인사드립니다.


교육과 관련된 에세이를 브런치에 써온지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교육과 관련되었다곤 하지만, 그냥 현장에서 교사로 살며 떠오르는 일들을 주절주절 써놓은 것에 불과한데 어쩌다보니 한 편 책으로 묶어내기도 하였네요. 다 꾸준히 저의 글을 읽어주고 관심 가져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옴니버스 식으로 쉽게 쓴 글들이 편집장님과 대표님의 손을 거치며 엮인 짜임새가 어찌나 좋던지. 제가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고, 저의 흩어진 글들을 그러모으느라 겪으셨을 고생에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맺어지며 저도 새로이 저의 지난 글을 읽어보니, 제가 교육에 대해 하고팠던 말들의 대강이 이 책에 다 담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량 조절이라는 현실적인 일로 책에 포함되지 못한 글은 브런치에 [미공개작]이란 타이틀로 충분히 옮겨 썼다고 스스로 믿어봅니다.


어찌 교육에 더 할 말이 없겠습니까만은,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야겠습니다. 아쉬움이 있을 때 머무를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밑바닥을 보이기 전에 멈추려고요. 하하.


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즈음 하여 돌아오려합니다. 그간 무사하시고 건강하십시오.

몸도 마음도 말이죠.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지내십시오.




어떤 책을 내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요기로...하하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311520


무려 무료배송이라는.

하하하하하.




https://youtu.be/oLxQDrx7lcc?si=I0906iH2ntAbcYQ8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아닌데, 자녀 교육서는 읽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