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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Nov 12. 2020

술 중에 술은 노상 낮술이라

어디든 술 들고 앉으면 바가 되는 것이지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주변에 열심히 떠들고 다니면, 참 고맙게도 주변 사람들의 여러 선물들이 들어온다. 특히 필자는 본인의 생일을 스스로 열심히 챙기는 편인데 (소소하게나마 파티를 연다거나), 이때 친구에게 받은 선물 하나를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다. 플라스크라고 하는 이 술병은, 아마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번즘 봤을 텐데 술꾼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쯤 이런 플라스크에 술 넣어 다니면서 마셔보고 싶었다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0/02/27839/)

 



 더프타운에서의 증류소 투어를 마치고 7시간 반의 기차여행을 통해 다시 에딘버러로 돌아왔다. 스코틀랜드의 자연경관은 몇 번을 말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웅장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관 속을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노라면, 정말 호그와트를 향해 가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에딘버러의 숙소에서 10~20분 정도만 걸어가면 칼튼즈 힐이라는 언덕이 하나 있는데, 순식간에 도심에서 벗어나 엄청난 전경을 맛볼 수 있다. 사진에서처럼, 그냥 털썩 주저앉아 아무 생각 없이 노닥거리기 좋은 장소였다.



 런던을 떠나기 전에, 혼자서 위스키를 한 병을 사서 마시는 건 너무 과한 것 같다고 고민하다가도 결국 한 병을 집었다. 수많은 위스키들 중에 선택 장애로 손이 떨리다가, 영국에 왔는데 잉글리쉬 위스키가 있길래 그냥 냅다 집어봤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와서 전통주 이름이 "The Korea"인 수준인 건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맛은 있었다. 이 위스키를 에딘버러에서도 선물 받은 플라스크에 담아 내내 들고 다녔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이 여행 중에 내가 맨 정신인 순간은 거의 없었다^^

칼튼스 힐에서 바라본 에딘버러의 전경과 노을. 해 지는 시간이 이상하게 늦었다.
술 중에 술은 낮술이라, 그중에서도 최고는 좋은 경치에 걸터앉아 마시는 것

 여행은 비(非)일상이다. 비일상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상에 하지 않던 짓들을 하는 것이다. 낮술이라 함은, 일상에서 정말 하기 힘든 일탈이자, 일상에 대한 반항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주말 아침에 눈뜨자마자, 냉장고에서 작은 캔맥주 하나를 꺼내 마셔보자. 묘한 죄책감과 동시에 그에 반하는 만큼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가 짜릿한 쾌감을 가져온다. 뭐 쉽게 말하면 하고 싶은데 못해본 것들 막 다 해보겠다 이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의 소중함을 가장 일깨워 주는 것 또한 비일상이다. 때때로 어떤 개념의 정의는 그 개념 자체보다도, 그 개념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의함으로써 이뤄진다. 쉽게 생각하면, 내가 연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을 잃었을 때 얼마나 힘들지를 상상해보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를 해쳐 고통(죽어가는 과정)을 느낀다. 같은 식으로 일상은 때때로, 여행과 같은 비일상을 통해 그 소중함이 정의된다. 낮술 얘기하다가 이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겠냐만은, 저 좋은 경치에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흥얼거리는 순간에 제일 우선 떠오른 게 지구 반대편에 있을 나의 가족과 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행 중에 나는 종종 이렇게 경치 좋은 곳 아무데서나 그냥 주저앉아 술을 깠다. 온갖 증류소와 양조장, 바를 찾아 여행을 왔지만 정작 술 한병 들고 아무 데나 앉으니, 그곳이 천하 명당의 술집이고 죽이는 경관이 안주거리였다.

너무 아름다웠던 에딘버러의 다양한 전경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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