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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Nov 05. 2020

깊은 산속 위스키 누가 와서 먹나요

기어코  찾아 들어간 맥캘란과 글렌피딕 증류소 방문기

 기어코 굽이굽이 찾아 들어간 더프타운은 정말 작고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생각해보면 위스키의 원료가 보리나 밀과 같은 곡물로, 이 일대는 정말 넓고 넓은 밭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냥 시골 맞다.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 긴장감을 좀 놓긴 했지만, 여전히 이 여행객 하나 없을 것 같이 한적한 시골 뷰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망연자실했다. 오죽하면 게스트하우스나 숙소도 없어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노부부의 집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루 묵었다. 이런 조용하고 말 안 통하는 곳에서 한적하게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자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더프타운(Dufftown)의 전경. 고개 한번 돌리면 마을의 끝에서 끝이 보인다. 아니 시리우스 블랙은 이런데로 숨어들면 그냥 잡히는거 아닌가??

 맥캘란 증류소를 나와 숙소로 와서 다음 날 들를 글렌피딕 증류소의 위치를 확인하고, 혹시나 발베니의 증류소는 예약이 안되는지 재차 확인했지만... 예약이 꽉 차서 불가능했다. 듣기로는 증류소의 크기와 투어 인원이 적어 미리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투어가 힘들다고 한다. 맥캘란의 경우에는 정말 큰 증류소를 8~10명 인원으로 투어 하는 프로그램 하나뿐이었는데, 글렌피딕은 투어 코스가 여러 종류였다. 물론 금액도 달랐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비싼 코스로 예약했다. 아침부터 위스키 마실 생각에 설레 하며 더프타운에서의 밤을 보냈다.


안녕 얘들아 너넨 무슨 소니? 나는 흑우라고 해^^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 동네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더프타운 숙소에서 글렌피딕 증류소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걸어가는 길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사진 찍는 재미도 있었고, 사진과 같이 뿔난 소들과도 인사했다.

 

  필자는 평소 복권이나 경품 당첨과는 거리가 매우 멀만큼 운이 좋은 편은 아닌데, 유독 먹을 복은 있는 편일뿐더러 이 여행에서 아마 내 평생 쓸 여행운은 다 썼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많기로 유명하다. 여행 가서 내내 햇볕 한번 못 보고 돌아온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헌데 내 10일이 다돼가는 런던 ~ 에든버러 일정 중에 비가 내린 날은 하루 이틀이었을뿐더러 사진과 같이 눈이 부시도록 쨍한 날에 스코틀랜드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너 정말 운이 좋구나, 이런 날씨는 나도 1년 중에 며칠 못 보는데

 가이드는 그레이엄(Graham)이라는 인자한 웃음이 인상적인 할아버지가 맡아주셨다. 글렌피딕 증류소에 도착하자, 투어 시작 시간에 맞춰 증류소의 역사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더니 투어 코스에 따라 관람객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돈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는데, 다른 관람객들은 전부 일반 관람코스로 빠지고 필자 '혼자'서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1 대 1 특별과외를 받는 기분이었다. 가이드조차도 그날의 날씨와 혼자 투어를 하게 된 것에 대해 아주 운이 좋다고 신기해했다.


아 왔다! 싶었던 순간. 맥캘란의 모던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던 전경. 당연히 직접 찍은 사진이다

 맥캘란도 그렇고 글렌피딕에서도 위스키의 증류 과정에 맞춰 내부 시설들을 소개해 주는데, 처음에 맥아(보리에서 싹이 튼 것)를 제분하고 발효하는 공간들에서는 참 특유의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가 난다. 특히, 이 매싱(Mashing)된 즙에 효모를 넣고 발효하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연구실에서 맡을 법한 배지 냄새 같은 구리구리한 냄새까지도 난다. 썩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이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그 위스키로 변한다는 것과 거대한 통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는 액체의 모습이 신기해서 빠져들게 된다.


왼쪽은 매싱(Mashing)기, 오른쪽은 발효과정을 위한 워시백. 둘 다 아래로 건물 한층만큼 길고 크게 뻗어있다.


 술이라는 것이 그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제작 원리는 발효, 증류, 숙성으로 축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포도를 발효하면 와인, 사과를 발효하면 시드르, 맥아를 홉과 함께 발효하면 맥주가 되고, 포도를 증류하면 브랜디, 사과를 증류하면 깔바도스, 맥아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된다. 이 곳에서 이뤄지는 발효 과정이 끝나면, 그다음은 생성된 알코올과 향미들을 농축하는 과정인 '증류'를 진행하게 된다.


글렌피딕의 증류기. 이 공간은 정말 덥다...


 많은 증류소들이 자신들의 증류기 모양을 아이덴티티로서 내세운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술병에 왼쪽의 증류기 모양 그림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증류기의 모양이 위스키의 향과 맛에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증류라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서 물, 알코올, 풍미를 내는 성분들을 분리해내고 농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증류기의 모양, 고개의 꺾인 각도, 온도 등에 따라 농축되는 향의 성분이 달라지게 된다. 즉, 위스키 원액의 맛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자세한 건 다음 링크를 참조해보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hemacallan&logNo=220263321319)



 이렇게 만들어진 위스키의 원액은 투명하고 애매한 향기가 난다. 사실상 우리가 아는 위스키와는 많이 다르다. 이는 위스키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인 '숙성' 단계가 남았기 때문이다. 소위 이 과정을 위스키 원액에 옷을 입히는 과정과도 같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어떤 오크통에서 얼마나 숙성을 하느냐에 따라 맛이 또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이제 오크통들이 쌓여 있는 저장고들을 보는데, 참 직원들이 오크통을 굴리는 모습이 괜히 동키콩을 연상시켰다. 안타깝게도 저장고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레이엄 할아버지가 거대한 위스키 뱃(VAT, 위스키를 블렌딩 해서 숙성하는 거대한 오크통)에서 한 모금 맛 보여 줬는데 처음에는 방심하고 꿀꺽했다가, 뱉는 대형참사를 저지를 '뻔' 했다. 이 오크통에 있는 원액은 우리가 사마시는 위스키와는 다르게 60도가 넘는 원액이다 보니 겁 없이 삼켰다가 정말 오장육부의 모양을 손쉽게 느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모금에서는 글렌피딕 특유의 달콤한 과실 향과 함께 여러 풍미를 느껴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좀 매웠다.

 마지막으로 고대하고 고대하던 블렌딩 & 테이스팅 타임이 다가왔다. 위의 사진 속 공간이 마스터 블렌딩 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위스키의 블렌딩 비율을 결정할 때 쓰는 룸이라고 한다. 앞에 준비되어 있는 위스키들은 각기 다른 캐스트에서 숙성된 위스키 원액들로, 원하는 대로 맛보고 직접 블렌딩 해서 나만의 비율로 위스키를 20cl 정도 담아갈 수 있었다. 아... 정말 이 여행 중 최고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만... 오늘은 혼자니까, 좀 더 보여줄게


 음... 명절에 외할머니 만난 기분이었다. 이건 마셔봤니? 아직 한자리 더 있지? 와 함께 원래 제공되는 4잔의 위스키에 더불어서 3~4잔 정도가 추가로 리필됐다. 챙겨갈 위스키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4종류의 캐스크 위스키들을 블렌딩 해보면서 맛보기도 바쁜데... 주는 족족 맛있다고 홀짝거리다 보니 어느샌가 만땅 취했다. 그렇다고 술쟁이가 주시는 술을 거부할 수가 있겠는가!!


 어디... 한잔 정도 더 들어갈 자린 있지?


I can do this all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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