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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Oct 30. 2020

해리포터와 비밀의 바

꼭꼭 숨어라 알콜냄새 맡을라~

 만일 내가 바를 차린다면, 내 공간으로서 바를 차린다면, 꼭 스픽이지 바 (Speak easy bar) 느낌이면 좋겠다. 스픽이지 바는 미국 금주령 시대에 몰래몰래 술을 팔던 바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조금 더 판타지를 갖자면, 내가 만들 바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비밀의 방 같은 느낌이면 좋겠다. 아래 사진은 비밀의 방 느낌은 아니지만...

왜 한 번쯤 이렇게 생긴 문에 저 틈만 드르륵 열리면 암호 대고 들어가는 그런데... 나만 로망인가?


 한국에도 이미 여러 스픽이지 바들이 자리를 잡았고, 전화부스나 책장으로 입구를 티 안 나게 만드는 등 상당히 신비로운 느낌으로 잘 만들어놨다. 하지만 결국 인터넷을 통해 사진이 몇 번 돌고 나면 결국은 특별한 모양의 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돼버린다. 뭐 사실 어쩔 수 없는 문제기도 하고, 그래도 막상 그렇게 꾸며진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정말 '비밀의 바'로 들어가는 기분이라 특별한 경험이 된다.




다양한 위스키 미니어처, 종류별로 담았어야 했다.

  에딘버러에서 친한 형님이 부탁한 위스키를 사려고 바틀 샵 몇 군데를 들렀다. 역시 위스키의 본고장답게, 바틀 샵에는 온갖 위스키뿐만 아니라 미니어처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했다. 당시에 왜 안샀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다.

 

 계산하면서 또, 바틀 샵 주인에게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근처에 괜찮은 바가 있나요? 영수증에 몇 가지 선택지를 받았고, 런던에서 받은 추천과의 교차 검증까지 마쳤다. 누가 보면 레퍼런스 체크하는 줄 알겠네... 대학원생 근성 어디 안 간다.




 그렇게 정한 다음 행선지는 바 브램블 (Bar bramble). 이 바는 참 여러모로 잊지 못할 장소가 됐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찾아가는 게 정 말 더 럽 게 힘들었다. 일단 필자는 기본적으로 치명적인 길치다. 여행을 가면 구글 맵은 필수고, 한국에서도 초행길 갈 땐 예정보다 20분은 일찍 출발한다. 길 헤맬까봐... 그래서 여행 갈 때도 로밍 빵빵하게 해 놓고 구글 맵을 손에서 떼질 않고 돌아다녔는데도 분명 구글 맵 상에 보이는 브램블 바를 도착해서 그 블록을 다섯 바퀴는 뺑뺑이를 돌았다.

분명히 지도 상에는 여기인데 웬 엉뚱한 테일러 샵만 덩그러니...

 영화 킹스맨 같은 건가...? 들어가서 술 달라고 하면 주는 건가...? 분명히 지도에는 여기라고 뜨는 데 어딜 봐도 바는 보이질 않았다. 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도 블록에 주저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둠... 둠... 둠... 어? 뭔가 클럽에서 나올 법한 빠방한 베이스 소린데...

  스위프트에서 샘이 적어준 쪽지에 Bar Bramble (hiphop)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아... 그 힙합이 뭔가 했는데, 진짜 노래를 힙합만 튼단 소리였던 건가보다. 그럼 저 베이스 소리가 분명 바에서 나는 소리란 건데... 하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저 창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야이 씨... 인간적으로 이걸 지도 보고 어떻게 찾냐...

 언뜻 보면 가게 창고 같아서 사실 지나쳤는데, 가만 들어보니 저 문 안에서 베이스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스픽이지 바 (speak easy bar)에 대해서 들어본 것이 생각났고, 쭈뼛쭈뼛 문 앞까지 가보지 저 금색 뱃지가 간판이었다. Bramble Bar라고 적힌 것이 보였고, 문에 가까이 가니 아까 언뜻 들었던 음악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에미넴이다 이건, 하고서 문을 열자 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바 내부에는 쩌렁쩌렁하게 음악이 울리고 있었고, 흡사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의 아늑함이 있었다. 아무튼 여기 찾느라 힘들었다며 바텐더에게 물 좀 달라 하자 낄낄 거리며 시원한 물과 메뉴판을 갖다 줬다. 온 팔에 문신한 약간 맥그리거 느낌 나는 바텐더가 아무래도 이 힙합만 트는 바의 DJ인 것 같았다.



 걷느라 힘들었어서 상큼하고 시원한 칵테일을 한 잔 주문한 뒤에 찬찬히 메뉴를 보다가 바 이름과 똑같은 칵테일을 찾아서 주문했다. 전에 런던에서 들렀던 바 떼르미니에서도 신기하다 했던 건데, 이 동네 바들은 간혹 자기 바 이름을 붙여서 제품처럼 포장한 칵테일을 팔고 있었다.

브램블에서 사용하는 브램블 진(이건 블루베리 맛, 바와는 상관 없는 듯)과 브램블 바 자체 제작 어피니티 칵테일

 오른쪽이 이 바에서 주문해서 만들어 파는 어피니티 칵테일이라는데 맛이 썩 괜찮았다. 약간 맨하탄 같은데 좀 베리향이 나는 느낌. 심지어 온라인으로도 주문이 가능한 듯하다. 단골 바가 있다면 그 바의 시그니처와 같은 칵테일을 내 냉장고에 쌓아놓고도 마실 수 있다는 건데... 썩 괜찮은 듯하면서도, 바텐더의 퍼포먼스를 못 보니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아무튼 이 두 잔을 홀짝거리고 있으니 또 시간이 흘러 로컬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근방에서 유명하고 좋은 바를 잘 추천받았다고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다. 이 비밀의 바 주인들에게 또 다음 행선지를 추천받아서, 나는 베이스 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필자가 찍은 바 내부 사진은, 어두워서 난리가 난 관계로 아래 주소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대체한다.

https://brewmook.wordpress.com/2014/02/26/152-bramble-queen-street-edinburgh/wpid-009-bramble-queen-street-edinburgh-interior-ba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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