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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Oct 26. 2020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조금씩 다 줘볼게

바텐더의 과도한 친절은 간에 해롭습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보았다면 알겠지만, 필자는 술이 약한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절대 센 편도 아니다. 소주 한 병 정도면 만땅으로 취하고 그 상태에서 꽤 오래가지만, 이후에 돌아오는 숙취는 금전적으로 비유하자면 이자가 제3 금융권 수준이다. 그런 나에게 이 여행 중에 과음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바 스위프트(bar swift soho)는 런던에서 갔던 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바다. 원체 친절하기도 친절했고, 바의 분위기도 너무 좋은 곳이다 보니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서 너무 아쉬웠던 순간이기도 했다. 왜 맛집도 여럿이서 가서 최대한 많은 메뉴를 시켜놓고 맛봐야, 제대로 경험했다 할 수 있지 않은가? 나 혼자서 맛볼 수 있는 술의 양은 한정적이었고, 그렇기에 그 다양한 위스키들과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주는 바텐더의 모습이 내겐 너무 고통스러운 그림의 떡이었다. 스위프트 소호는 지상 바와 지하 바로 나뉘어 있는데 약간 모습이 빛과 어둠의 공간 같다. 차이가 잘 보이게 찍은 사진이 없어서 아래 사진은 구글링으로 대체하겠다.

왼쪽이 지하, 오른쪽이 지상. 지상은 낮에 사진보다 더 밝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점심을 먹고, 좀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도착한 스위프트는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어 준비 중이었다. 다만 혼자 멀뚱멀뚱 서있으니, 친절하게 바 테이블로 안내해주며 메뉴판을 줬다. 개인적으로 처음 가는 공간에서 첫 주문은 항상 어렵다. 바텐더에게 말도 좀 붙여볼 겸 상큼한 스타일로 추천을 부탁했고, 첫 잔을 받을 때즘 여느 곳에서처럼 호구조사가 시작됐다.

어? 위스키 좋아해서 온 거야? 그럼 우리 지하 바로 가봐야 할 텐데,
지금 청소 중이라서... 잠시만...
내려가 있으면 가방이랑 잔 다 갖다 줄게 내려가 볼래?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정도의 친절에 잠시 벙 쪄 있었는데 떠밀리듯이 나는 지하 바로 내려갔고, 아직 오픈 준비 중인 직원들 사이에서 뻘쭘해하며 바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뒤에 위층에서 날 안내해준 수염 덥수룩한 바텐더가 내 가방을 들고 내려오더니, 샘이라는 바텐더에게 인수인계해주듯 나를 넘겼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아 한국에서 왔어? 나 포시즌즈 호텔 바에서 잠시 있었어,
가서 내 안부 좀 전해줄래?

    

 음... 가게 되면 아는 척해보겠다 했으나, 사실 바텐더 이름도 가물가물할뿐더러 포시즌즈 호텔은 내겐 너무 멀다. 물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아무튼 나를 인수인계(?) 받은 샘이라는 바텐더는 어떤 스타일의 위스키를 좋아하냐며 물었다. 당시의 나는 아일레이 지방 위스키들의 피티함에 한창 취해 있던 터라, 그런 위스키 추천을 부탁했는데. 너무 피티한 위스키를 맛보면 다른 위스키들을 맛보기가 힘드니, 다른 것들을 먼저 맛보라고 샘이 권해왔다. 몇 가지 위스키 병들을 꺼내더니, 아주 작고 귀여운 잔에 조금씩 따라주기 시작했고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친절에 나는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하는 기분이었다.


분명히 세잔 정도 마신거 같은데 기분은 한병은 마신듯 했다. 저 뒤에 샘(Sam)이 또 다른 병을 꺼내러 간다...

 저 왼쪽에 더 콤파스 박스라는 위스키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데, 약간 복숭아 향이 나는 듯한 굉장히 향긋한 위스키였다. 저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어디 없나 종종 찾아보는데, 마셔보질 못했다. 아무튼, 세 잔 정도를 골라서 마시기까지 맛보기 잔만 한 5~6잔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상상해보라, 바 오픈 시간에 반팔 반바지 샌들 차림의 동양인 하나가 백팩 메고 쫄래쫄래 와서 앉았는데, 아직 오픈도 안 한 바에 앉혀 놓고 맘에 드는 거 있을 때까지 맛보고 고르라고 조금씩 따라주는데, 내가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는지. 바텐더가 베푸는 치사량의 친절에 나는 마신 술의 서너 배 즘은 더 취한 기분으로 계산하고,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팁을 두고서 바를 떠났다. 후에 후기를 보니 늦은 시간에 가면 자리가 없을 만큼 인기가 많은 바라던데, 내가 나올 때즘엔 지하의 테이블들에 손님들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나와서 저녁 대신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를 시켜놓고 (여행경비를 술에 쏟느라... 밥이 좀 부실했다) 샘이 추천해준 에든버러의 바와 바틀 샵 리스트를 보면서, 일기를 쓰고는 숙소로 향했다. 언젠가 당신이 만약 런던에 갈 일이 생긴다면 다른 어디는 못 가더라도 이 곳, 바 스위프트 소호는 꼭 한번 가보길 바란다. 바텐더의 과도한 친절이 당신의 간을 망칠지라도 이곳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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