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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Oct 25. 2020

여기 말고 근처에 좋은 바가 있나요?

바텐더의 추천 따라 이리저리 만취 삼만리

 식당에 가서, 여기 말고 근처에 좋은 식당 있냐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음... 나는 별로 해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런던에서의 바 투어(bar tour)는 오로지 이 질문 하나에 의지해서 돌아다녔다.


바텐더? 혹시 이 주변에 괜찮은 바가 있을까요? 추천 좀... 부탁해도 될까요?


바 떼르미니에서 적어준 메모, 위스키를 살만한 샵과 바들을 추천해줬다. 땡큐!

 내가 본 여러 직군의 사람들 중에, 바텐더라는 사람들은 참 재밌고 신기한 생물들이다. 내가 봤던 그 어떤 직군보다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다른 바텐더나 바를 추천해주는 데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번 글에서 들렀던 바 떼르미니에서도 바텐더에게, 주변의 다른 좋은 바가 있는지 물었다. 나 같은 손님이 아무래도 종종 있는지, 메모지를 꺼내오더니 본격적으로 바 리스트를 작성해줬다.


 이후에도 나의 런던 여행 루틴은 기상해서 돌아다니다가 점심 먹으면서 낮술 한잔, 그리고 소화 좀 되면 커피 대신 낮술 한잔 하면서 바텐더에게 다음 행선지 추천받기, 그리고 다시 관광지를 둘러보다가 식전주 한잔, 저녁 먹으면서 한 잔 하고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루틴이었다. 한마디로 밥 술 관광지 술 밥 술... 재밌는 건 정말 그 어느 바텐더 하나도 기분 상해하기는커녕 기쁜 마음으로 추천해준다는 점이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나?


 이 여행 전후로 나는 한국에서 많은 바텐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여행에서 만난 바텐더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만난 바텐더들도 그랬다. 서로 경쟁? 텃세? 그런 건 엿 바꿔 먹은 사람들이다. 먼저 영업시간 끝나는 쪽이 다른 영업 중인 바에 놀러 가기도 하고, 쉬는 날 셔터 내려놓고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한다. 이쪽 바에서 술 얘기를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동네에 다른 어느 바에 그 친구가 그 칵테일은 잘한다고 칭찬하며, 놀러 가 보기를 장려한다. 덕분에 내 지갑과 간은 릴레이로 박살이 났다.


 아무튼 왜 바텐더들은 이런 경계심 없는 마인드를 가졌나 하고 보니, 결국 이는 칵테일이라는 술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돼지고기 집 옆에 돼지고기 집이 생기면 제로섬 게임이 되겠지만, 바 옆에 바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언뜻 보면 둘 다 바(bar)지만 바텐더들의 장기나 그 바의 특색 등을 생각하면, 나 같은 술쟁이들은 그날그날 어차피 다른 바를 가게 되어있다. 사실상, 돼지고기 집 옆에 소고기집이 생기는 꼴이라 볼 수 있다. 어느 골목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하게 된다면, 어차피 나 같은 술쟁이들은 몰리게 되어 있으니 사실상 서로 윈윈 하는 모습이 된다.

 

바텐더 추천으로 찾아가 바 아르테시안 (Artesian), 랭햄 호텔의 라운지 바였다.

 필자는 여행 중에 호텔에서 자주 묵어보진 못했는데, 특히 라운지 바가 있을 정도의 규모의 호텔에서 묵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 호텔의 라운지 바는 여러 군데 가봤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묵어보지도 못할 4성, 5성 호텔의 라운지 바만 이용해 보는 것도 꽤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내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허름한 반팔 반바지에 백팩 멘 동양인 남성이 4~5성 호텔 라운지로 샌들 끌면서 들어오는 모습을 반기는 호텔리어들은 없었다. 바 테이블에 앉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까지도, 썩 반기진 않는 눈치다. 바 아르테시안은 걔 중에 꽤나 친절했지만, 좀 심하게는 메뉴판 주고는 말 한마디 안 걸어주는 곳도 있었다.


아 거기? 머리 좀 길고 수염 난 걔? 맞아 나 거기 자주 놀러 가. 그 친구 추천으로 왔구나? 그 친구 맨하탄이 아주 좋은데 마셔봤어?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무뚝뚝한 바텐더도 내가 두 번째 잔을 주문하며 어느 바의 바텐더가 추천해줘서 여길 왔다 하면 그제야 웃으면서 말문이 트인다. 이 아르테시안 바 이후에 갔던 사보이 호텔의 금발 여성 바텐더가 그랬다. 정말 무뚝뚝해 보이던 그 바텐더는, 내가 떼르미니에서 준 메모지를 보여주며 여기서 추천받아서 오게 됐는데 그러니 당신도 내게 다음에 갈 바들을 추천해줄 수 있나?라고 묻자, 굉장히 흔쾌히 메모지를 꺼내 또 바 리스트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보이 호텔의 아메리칸 바는 메뉴판이 아주 멋있는데, 칵테일마다 스토리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저거 파운드다... 정말 비싸다


 이렇게 바텐더의 추천을 받아, 그날그날 동선을 잡아보는 건 내겐 처음 시도해보는 방식의 여행이었고 또 이 바 투어 자체도 어느 네이버 블로그를 보고 대책 없이 시작해본 건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실로 너무 재밌고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고, 지금도 그때 썼던 내 일기장에는 바텐더들에게 받은 메모장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때때로 그 메모지들을 꺼내 읽고 있노라면, 아직도 그때 마셨던 술냄새들이 나는 것만 같다. 이렇게 받은 추천을 통한 여행은 런던에서 그치지 않고 그다음 도시인 에든버러까지 이어졌다.


 어차피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을 여행이라면,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바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며 물어보는 것도 괜찮다. 술뿐만 아니라 근처의 재밌는 장소들이라면 싹 다 꿰고 있는 사람들일테니


여기저기서 추천 받은 바&보틀샵 리스트.추억이라 생각하고 애지중지 보관중인데,  종이에서 아직도 술냄새가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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