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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Oct 22. 2020

입국심사관이 위스키 추천을?

위스키의 나라 영국, 아니 스코틀랜드인가?

이마트에서 한 3~4만 원 주고 데려온 아이. 개인적으로 위스키는 물 조금 타서 얼음 없이 먹는 것을 선호한다. 두고두고 자기 전에 홀짝이기 좋다

 나는 위스키를 정말 좋아한다. 과실주나 소주가 빨래 후에 은은하게 나는 섬유유연제 향 정도라면, 위스키의 향기는 마치 향수와 같다.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와는 또 다른, 훌륭한 나이트 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위스키 때문에 바로 이 여행을 결심했다.

아, 그리고 어서 당신도 주변에 아무 술이라도 하나 들고 와서 마시면서 보길 바란다.





 영국의 입국심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했다(찾아보니 지금은 안 그렇다고 하는데). 출국 일정을 증명할 수 있는 티켓, 체류할 숙소 바우처, 사용할 현금의 양 등등 사람 바이 사람으로 검사를 하겠지만, 당장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만 해봐도 영국 입국심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수두룩 하게 볼 수 있다. 비행기에서부터 와인 몇 잔을 마신 나는 사실 별 긴장 없이 입국심사대에 들어갔다. 내 심사관은 굳은 표정으로 어떻게 왔냐고 물었고, 나는 정석대로 여행을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입국심사관은 어디 구경하러? 뭐 때문에?라고 되물었고 나는


술 마시러, 위스키 좋아해서 위스키 마시러 왔다.

라고 답했고, 입국심사관의 굳은 표정에는 미소가 슬 번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웃긴 대답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나한테 술냄새가 났나? 심사관은 "to buy? or drink?"라고 물었고, 나는 자신 있게 "of course, drink"라고 대답했다. 피식하고 웃던 심사관은 갑자기 앞에 있던 메모지를 뜯어 무언가를 적더니 내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인데, 꼭 먹어봐. 위스키 익스체인지라는 매장을 찾으면 있을 거야. 영국에 온 걸 환영한다.

 그때까지의 나도 해외를 적게 다녀 본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살다 살다 입국심사 중에 술 추천을 받아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그때 입국심사관이 추천해준 위스키는 penderyn이라는 웨일스 위스키였는데 결국 마셔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위스키 한 병을 사서 들고 다니면서 마시기엔 좀 부담이 됐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나중에 결국 한병 사들고 돌아다니면서 마심)


길 곳곳에 있는 바틀 샵. 필자는 해외여행을 가면 제일 먼저 숙소 근처에 바틀 샵이 있는지부터 찾아본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영국은 그야말로 위스키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스키를 생산하는 여러 나라가 있고, 여러 원료를 쓰는 위스키들이 있지만 애주가들이 손꼽는 위스키는 역시 스카치위스키가 대부분일 것이다. 정확히는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유럽 북서쪽의 자치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를 말하며, 잉글랜드 위스키, 아메리칸 위스키, 아이리쉬 위스키 등등 위스키의 산지는 다양하다. 술의 종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을뿐더러, 아마 취한 것보다도 졸릴 테니 넘어가자.

 



 첫날은 시차 적응 겸, 밤 산책을 조금만 하고서 숙소에서 쉬며 런던 여행 계획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사실 런던을 3박 4일 일정으로 넉넉하게 잡으면서도 처음에는 별다른 여행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한데 정작 각종 교통권을 예매한 후에 네이버 블로그를 뒤적거리다가, 런던의 여러 좋은 바들을 소개하는 글들을 보게 되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보니 더 월드 베스트 바라는 순위 사이트가 있는데, 이 곳에 소개된 런던에 위치한 바만 해도 꽤 여럿 되었다. 해서 원래 시차 적응을 계획했던 런던에서의 일정은 괜찮아 보이는 바들을 돌아다니는 바 투어(bar tour)를 하기로 결심했다.


 유럽권은 전반적으로 바(bar)라는 공간의 영업시간이나 분위기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영업 시작 시간이 꽤 빠른 편이며, 마치 카페와 같은 분위기의 공간인 곳들이 많다. 실제로 식전주, 식후주 등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대에 마시는 술의 종류들도 많다. 음...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낮술을 할 곳이 널리고 널렸다는 말이다


 뭐 실제로 내 여행 일지의 대부분은 정말 유명한 관광지 몇 군데 들르는 것 외에 어디서 마시거나, 마실 곳을 고민하거나, 마실 것을 사러 다니거나, 마실 것을 만드는 곳들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남들이 보러 다니는 관광지들은 내게는 그저 잠시 술을 깨기 위해 들르는 산책로 정도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밥은 잘 먹어야 하니, 배를 든든히 채우고 처음으로 향한 행선지는 바 떼르미니라는 곳이었다.

바 떼르미니의 전경. 외부도 내부도 정말 그냥 평범한 카페 같다.

 이 곳에서 보냈던 시간 중에 괜히 강렬하게 남은 인상의 사내가 하나 있었는데, 외모로 치자면... 영화 테이큰 2나 3에 나왔던 가죽재킷을 입은 악당 보스 같은 모습이었다. 거침없이 들어오면서 바텐더에게 제일 잘 나가는 칵테일이 뭐냐고 물으니, 바텐더가 우리 바의 시그니처는 네그로니라는 칵테일이고 3 종류가 있다고 권했다. 그러자 사내는 그걸로 달라하더니 현금을 내밀곤 자리에 앉지도 않고 바에 선 채로 우버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정말 식후 에스프레소 한잔 하듯이 네그로니를 홀짝이더니, 우버가 도착하자 잔돈을 팁으로 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옆에서 본 느낌이었다.


바 떼르미니의 내부 전경, 바텐더만 없으면 딱 카페다. 대충 저 왼쪽에서 두 번째 좌석에 앉았는데...

 

 대충 낮 3~4시 정도의 시간대였던가, 반 정도 차 있던 바에서 나는 대충 좀 상큼한 칵테일을 부탁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잔으로 아까 그 사내가 마신 네그로니를 부탁했다. 네그로니는 굉장히 클래식한 칵테일이라 여기저기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마셔본 적은 없는 칵테일이었다. 이 바에서는 네그로니만 3~4종류를 시그니처 레시피로 선보이고 있다며 바텐더가 다시 한번 자랑했다. (어차피 그거 다 못 마시는데...) 그리고 내가 받은 그 네그로니는 음... 대충 과실 맛과 감초 향을 섞어놓은 듯한, 새콤달콤 쌉싸름한 묘한 맛의 술이었고, 마치 처음 술을 마셨을 때처럼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Umm... It's good 만 연발, 돈 아까우니 열심히 삼킴)


 아 지금은 어떻냐고? 여느 술이 그렇듯, 시간이 흘러 없어서 못 먹는 술이 됐다. 지금은 내 최애 식후주다.


왼쪽이 첫 잔으로 주문한 글렌파글라스를 베이스로 한 로브로이 (변주 한 것이라고), 그리고 오른쪽이 그 어려웠던 네그로니. 그 옆에 있는 메모지가 내가 이 다음에 쓸 글의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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