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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쟁이 Oct 21. 2020

첫 장? 아니 첫 잔

나의 술 일기 그 첫 잔의 이야기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잔, 요즘은 마트에 수입 주류가 정말 다양해졌다.

영화 소공녀를 보면, 주인공은 집을 빼는 한이 있어도 위스키 한 잔과 시가 한 대를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2~3만 원 하는 옷 한 벌 사는 데에는 세상 신중하지만,

2~3만 원 하는 와인 한 병 고르는 데에는 망설임이 없는 사람.

그렇다고 돈과 여유가 많아서 사치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랬더라면 저 둘을 다 사면되니...

앞서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필자는 정말 집을 뺄 정도는 아니고 맛있는 술들을 찾아 헤매는 술덕후, 주정뱅이 정도 되시겠다.





당신은 퇴근 후 즐겨마시는 술이 있나? 소주? 맥주? 막걸리나 와인은 어떤가?


 퇴근 후 맥주 한잔은 특별히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가장 호불호 없는 하루의 마무리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퇴근 후 맥주 한잔을 연료 삼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중이니... 지금 당신도 괜찮다면 근처에 있는 아무 술이나 따서, 지금부터 내가 적어볼 소소한 음주 썰들을 안주 삼아 즐겨주었으면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의 술 마시는 모습에서 많은 호기심을 느꼈다. 성공한 CEO가 사무실에서 따라 마시는 위스키, 제임스 본드가 젓지 말고 흔들어 달라던 마티니, 허름한 바에서 꾸깃한 지폐 한 장을 내밀고선 받은 위스키 한 샷을 입에 털어 넣는 주인공의 모습 등이 내게는 한밤 중의 라면 광고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막상 겪었을 때는 생각보단 별거 없단 느낌이었지만... 일하다 말고 마신 위스키는 성공한 사업가보다는 기분 좋은 주정뱅이 같았고, 젓지 않고 흔든 건지 흔들지 않고 저은 건지 모르겠는 마티니는 일단 쓰고 맛이 없었다. 허름한 바에서 꾸깃한 지폐... 일단 선불인 바도 없을뿐더러, 내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위스키를 사고는 한입에 털어 넣는다면 그건 아마 내가 복권에 당첨된 날일 것이다. 이처럼 나의 초라한 로망들이 산산조각 나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그런 알코올과 관련된 것들에 미련을 버리기는커녕 더 지독한 술 덕후가 되어 있었다.

이런 왁자지껄한 바에서 꼬깃한 지폐 한 장을 술로 바꾸는 모습, 괜히 한 번쯤 해보고 싶지 않았나? 나만 그런가...


 처음 술을 배울 때, 아버지는 내게 이슬만 마셔볼 게 아니라 좋은 술을 마셔봐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래야 밖에 나가서 허튼 것들 안 마시고 다닌다고... 그때 마셨던 술이 꼬냑이라는 것이었고 그것에 적힌 XO의 뜻을 알게 되는 것과, 아버지가 그 술을 왜 그리 높은 장에 깊숙이 넣어두셨었는지를 깨달은 것은 내가 한참 크고 나서의 일이었다. 특별히 소주와 맥주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 기숙사 생활서부터 나는 이런저런 술들을 사다가 마시기 시작했고, 대학원생이 될 때즘에는 바텐더 형님이 반겨주는 단골 주정뱅이가 되어 있었다.


 여느 대학원생들처럼 나 역시 알코올과 카페인이 논문의 주된 연료였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레퍼런스를 찾는 것만큼이나 내가 마시는 술들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칵테일을 마시면서 그 유래에 대해 듣는다거나, 와인을 마시면서 그 와이너리나 와인에 얽힌 썰을 듣는 일들은 내겐 더없이 좋은 술안주였다. 물론 그래서 그 모든 것을 기억하냐... 하면 당연히 그건 절대 아니고, 또 이 글을 통해서 내가 아는 술에 대한 지식들을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필자는 그저 평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잘 팔아먹던 몇 가지 술과 관련한 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팔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적어보게 됐다.


 내가 가진 술안주 거리들 중, 아마 한 향후 10여 년 넘게까지도 가장 잘 팔릴 썰은 2018년도에 다녀온 유럽 여행 이야기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이니... 특히 코로나 덕분에 해외여행 길이 막혀버린 요즘 같은 때라, 술 한잔 할 때마다 더욱 간절히 생각이 난다. 내가 그 여행을 다짐하게 만든 것은 어느 날 집에서 위스키를 홀짝이다 말고 발견한, 맥캘란의 새로 지은 증류소 사진이었다.


맥캘란이 2018년에 개방한 새 증류소의 모습. 마치 언덕의 벙커 같기도 한 모습이다.

 어르신들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시면 안 취한다고 했던가, 술쟁이들에게 저렇게 멋진 경관은 술을 취하지 않게 해주는 안주와 같다. 그 날 나는 집에서 저렴한 가성비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혼자 핸드폰을 또닥거리고 있었고, 내가 기억하던 맥캘란의 맛과 증류소의 모습이 내게 한 가지 생각에 불을 붙이게 해 줬다.


가자. 가서 마셔봐야겠다.


 대학원생이 무슨 돈이 있겠냐만은, 2018년으로 넘어가던 그즈음에 일단 휴학계를 냈다. 학부생 때도 안 했던 휴학을 대학원생이 되어서 한다니... 설레기도 하고 수업을 짼 대학생이 된 듯한, 두근두근하기도 하고 조금 긴장되는 마음으로 자취방도 뺐다. 본가에서 머물며 외주를 받아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나는, 술에서 시작해 술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를 거친 한 달간의 여행에 나는 거의 단 한나절도 술에서 깨어 있던 적이 없었다.


기어코 찾아간 맥캘란 증류소. 개방한 지 한두 달도 안된 곳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차까지 얻어 탈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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