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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Sep 28. 2023

영원한 밤은 없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드디어 나의 무기력이 마르고 코끝엔 선선한 바람이 스친다.


이번 여름은 더위가 잘못했다고 탓하고 싶을 만큼 지쳤고 장마철의 습기를 다 빨아들인 듯 몸이 무거웠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늘 젖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꽤 길어지자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먹먹한 기분이 스며들어 내 안은 온통 회색이 되었다.


사실 무기력과 우울은 수시로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찾으려 했고 기필코 찾아내고 말았다. 이번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고 혹시 우울증이 또 찾아온 걸까 봐 무서웠다. 이번에도 지레 겁을 먹고 스쳐 지나가는 우울의 멱살을 잡고 선방을 날렸다. 그럴수록 우울은 나에게 두세 배쯤은 너끈히 갚아 주었다. 우울에 지고 싶지 않은 밤이었는데 지고 말았다.


그런 밤이 오면 지친 몸은 침대에 누이고 머릿속은 바쁘게 흘러간다. 분한 마음을 어디다 탓할 수 없어 내 탓으로 돌리는 날에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와 날 짓눌렀다. 무거워진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려고 했던 계획이 무너지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름의 노하우로 명상을 하고 글을 쓰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려고 했지만 큰 효과를 볼 순 없었다. 불안감은 더욱 커졌고 불안한 마음에 나를 더욱 옥죄며 통제하려고 했다. 빨리 이 더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조급해졌고 생기 있었던 나를 그리워하며 지금의 나를 부정했다. 이 모습은 내 모습이 아니라고.  


그러다 나를 탓할 힘도 다 빠지고 말았다. 늪에 빠지면 허우적댈수록 더욱 빨리 빠진다는 것을 직감한 사람처럼 힘을 풀었다. 더 이상 나아지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하지만 영원한 밤은 없다. 다르게 말하면 낮이 영원하지 않듯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는 것이 있다.


돌아보니 나는 내가 슈퍼우먼인 줄 알았다. 일과 글, 운동, 인간관계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키워나가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방전되고 말았다. 배터리가 다 됐는 지도 모른 채 자책하는데 에너지를 썼으니 무기력이 길었던 게 이해가 갔다.


꾸준히 하려면 빡세게 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쉼이 필요하고 보상을 주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번아웃을 게으름이라고 오해해서 나에게 각박하게 굴었는데 차라리 다 놓아버리고 쉬니깐 회복이 되는 걸 느꼈다.


열심히 사는 스스로에게 취해 자만심이 들었는데 번번이 인생은 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무기력의 이면에는 충전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완벽을 지향할수록 완벽해지지 못하는 모순을 느꼈다. 이번에 나의 한계를 느꼈고 한계를 알았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씩 하면 된다.


어두워야 깊게 잠이 드는 나이기에 잠을 자고 힘을 내어야지. 우울에 잠기더라도 날 돌아보고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수많은 밤이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고 이제 다시 찾아오는 밤이 두렵지 않다. 또다시 어둠은 지고 저 멀리 햇무리가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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