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던 껌은 휴지통에
20대에는 고민이 많았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좌절되는 상황이 생기니 고민이 늘 수밖에 없었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걱정하는 걸 즐겼던 거 같기도 하다.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이랄까. 은연중 멋있다고 느꼈었다.
이십 대 중반에 겪은 우울증 이후로는 조금만 불안해도 과한 자극으로 느껴져 별 일이 다 커 보였다. 요상한 허세와 불안이 콜라보를 이뤄 크고 작은 고민을 입 속에 껌처럼 가지고 다녔다. 공부하고 일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입천장에 잠깐 붙여놓았다가 어느새 질겅질겅 씹어댔다. 하루종일 고민을 곱씹고 또 곱씹느라 머리가 아팠다.
또 입 속에 있는 고민이 자꾸 입 밖으로 튀어나와 친구들에게 말하고 나면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씹던 껌을 반길 사람은 없으니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다들 각자의 고민이 있고 힘들게 사는데 혼자 징징댈 순 없었다.
끙끙 앓다가 터지더라도 내 고민은 내가 끝내기로 했다. 보통 고민은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할 때 더 커진다. 뭔가 고민이 되면 눈 딱 감고 첫발이라도 내딛는다.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방법이 보였다.
한 때 미래가 불안해서 영어강사가 적성에 맞지만 투잡을 하고 싶었다. 그나마 관심이 가는 영역을 탐색하기로 했다. 주말을 이용해 꽃을 배우러 다니고 친구의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로운 영역을 맛보기로 했다. 이때 알게 되었다. 난 꽃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이 잘 맞는다는 걸.
꽃이 상품이 되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데 금방 시들어버려 허무했다. 손님을 응대하는 건 재밌지만 꽃을 다듬고 관리하는 시간은 지루했다. 그리고 꽃을 알려주는 선생님께서 너무 불친절해서 수업 내내 불쾌했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 이렇게 가르치는 게 서로에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혹시 나도 학생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면 반성했다.
방향성을 잡은 뒤로는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며 영어교육 자격증을 따서 전문성을 키웠다. 가르치고 말하는 걸 좋아하니 강사가 딱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사로서 영역을 넓히기 위해 사이버 대학에서 복수전공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학위와 자격증을 땄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서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되어 미래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고민을 해결하려면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한다. 씹던 껌은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자. 대신 방법을 강구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책상 밑에 붙여놓은 껌을 다시 씹지 않기로 한 뒤는 고민이 생기면 바로 뛰어든다. 그러다 보면 고민은 사라지고 행동만이 남는다.
이제 고민을 오래 하지 않게 되었다. 고민하면 머리만 아프다. 그럴 시간에 뭐라도 하자.
껌은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자. 그리고 버린 껌에는 미련갖지 않기로 했다. 삶을 끈적이지 않고 깔끔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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