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과 결혼할 수 있을까 후편
전편에서 말한 대로 재밌는 사람을 좋아한다. 라떼는 일요일 밤 9시에 자는 어린이는 없었다. 개그콘서트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세일러문이 그려진 핑크색 내복을 입고 언니랑 난리부르스를 추다가도, 개콘이 시작되면 소매에 붙은 밥풀 두 알처럼 아빠다리를 한 채 티브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바나의 아침의 “밤바야~”부터 “엽떼여”, 수다맨, “무를 주세요~!” 그리고 “선생님 똥칼라파워!” 까지 엘리트과정을 밟으며 유머조기교육을 마쳤다.
개그콘서트 코너 중에 ‘사랑의 카운슬러’를 가장 좋아했었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공감과 웃음을 끄집어내는 게 정말이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센스 있게 찰나를 비집고 들어가 자신 있게 던진 유머 안에는 비상함이 있고, 노력이 있다는 걸 내복차림 소녀는 알았다.
이태선 밴드의 엔딩곡이 흘러나오면 눈을 질끈 감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침대로 향했다. 잠이 오지 않아도 천장에 붙은 야광별을 세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었다.
지금도 재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눈이 번쩍 떠진다. 치킨무처럼 톡 쏘면서 개운하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유머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유머는 반드시 둥글어야 한다. 남을 찌르거나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는 다정한 유머가 좋다. 이 선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아서 매우 귀하다.
나름 재밌기로 방귀 좀 뀌어본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재미를 위해 던진 막말에 기분이 상하거나 애쓰는 게 보이면 마지못해 그냥 웃어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집에 오면 피곤해서 녹초가 되는데 둥근 유머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뾰죡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몸과 마음이 둥근 비눗방울이 되어 두둥실 날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노잼이라 불리지만 하루종일 어릴 때로 돌아간 처럼 꺄르르 꺄르르 웃게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개그맨도 좋지만 비눗방울처럼 순수하고 둥근 유머를 아는 버블맨이 나에겐 와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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