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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나라 Nov 28. 2020

슬픔의 이유에 갇히지 않고도 슬픔에 대해 말하기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김금희의 소설은 마음에 구멍을 뻥 뚫었다가도 촉촉한 흙으로 천천히 메워주는 것 같다. 마치 세실리아의 예술 작품처럼? 특히 조중균의 세계를 읽은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먹먹했다.
나는 조중균 씨 같은 사람을 보면 피하기 급급한데 김금희는 그를 관찰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에게 말을 걸고 그와 함께 정수기 옆에 있어 주고 저녁에는 친구 술집에서 함께 술 한잔을 한다. 그리고는 조중균 씨를 우리의 친구로 만든다. 공허하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우리는 아직 괜찮다고 알려준다.
하지만 안심이 되려고 하면 옆에서 아직 끝난 거 아니라며 짐을 가득 안겨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짧은 소설이 끝날 때의 기분이 그랬다. 그가 나눠준 큰 짐을 들쳐 메게 된 느낌. 그전까지는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짐. 누구의 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조중균 씨, 또는 세실리아와, 또는 양희와 아는 사이가 된 것만 같으니까 외면할 수 없는 짐.
김금희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슬픔의 이유에 갇히지 않고도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소설이 언제나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우리 마음에 구멍을 뚫고 무거운 짐을 주기도 하지만, 계속 읽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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