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iciel May 27. 2021

60. 오늘 기사님은 어떤 노래를 틀어주실까?

버스 모니터링하기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모니터링을 하는 일은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매일 출퇴근을 할 때마다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주 5일, 아침저녁으로 늘 똑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면서 일지를 적게 되었다. 


그 전에는 별생각 없이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탔다면, 모니터링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어떤지, 그래서 도로 위의 상황이 어떤지, 기사님이 속도를 얼마나 내는지 등을 살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자리에 앉아 일지를 일일이 다 적기에는 어려웠다. 보통 버스 내부가 한산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면 붐벼서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가는 일도 있었고, 서서 가다 보면 기록을 하는 일이 아무래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일지 작성용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적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카톡에다가 기록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양식에 맞추어서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들을 카톡에 메모해놓고, 버스에 탈 때마다 처음 탑승했을 때와 내릴 때의 시간과 정류장을 기록하고 버스가 움직일 때 기사님이 규칙을 잘 지키는지, 그 외에 담당자가 참고할 만한 도로 상황이나 날씨 같은 정보를 적어 두었다. 그리고 저녁에 일지를 작성해서 회사에 제출했다. 모니터링 담당자님은 내가 꼼꼼하게 잘 적어준다고 칭찬해주셨다. 


처음에는 평가를 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얼마간 지나고 나자 익숙해져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편하게 운전을 잘해주셨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기록을 하기 위해 나는 버스를 탈 때 이어폰을 끼지 않고 주변 소리를 듣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평가 항목은 아니지만 오늘의 기사님 표 선곡은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이 눈과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기사님들이 틀어놓은 라디오를 통해 그분들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평범하게 뉴스를 틀어놓는 분도 있었고, 옛날 팝송을 틀어놓는 분도 있었고, 드물지만 올드락 비슷한 음악을 틀어놓는 분도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편이라서 가끔 그런 분을 만나게 되면 반가웠다. 


또 버스 운행 평가 항목 중에는 필수 항목은 아니라서 평가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승객들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인사를 꼭 해주시는 기사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버스가 서고 출발할 때마다 안내하는 것도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매 정류장마다 꼬박꼬박 마이크로 안내해주시는 기사님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기사님은 정말 직업정신이 투철하신 분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분들이 자신의 업에 그만큼 충실하고,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을 통해 회사에 알리는 것이었다. 


기사님들의 입장에서 보면 버스를 운전하는 것도 참 고달픈 서비스업인 것 같다. 그래서 별 것 아니지만 버스를 탈 때마다 나도 기사님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모니터링 활동을 하면서 거의 같은 버스를 탔지만 사정상 다른 버스를 타게 될 때마다 사소한 디테일에서 차이를 느끼고는 했다. 아, 이 버스 노선이 참 잘 운영되고 있구나, 이 운수회사에서 승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매일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일은 어떻게 보면 참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일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수행해내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9. 버스 모니터링 요원이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