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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01. 2024

조금씩의 힘

매일 매일


주말에 친정엄마 생신이라 서울에 다녀왔더니 집안일이 밀려있었다. 지난 주는 더욱이 숨가쁜 번역 마감과 프로젝트 참여로 정신이 하나도 없어 집안이 더 엉망이었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온라인으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점심도 먹고 서울에서 사온 태극당 버터크림빵까지 먹고나자 정신이 들었다. 


아침먹은 그릇 돌린 식기세척기를 정리하고 점심먹은 그릇들에 냉장고 정리까지 하니 산더미 같은 그릇들이 쌓여있었다. 거기다가 팬트리도 요 몇주 정리를 못했더니 이것저것 엉망이고 일교차가 크다보니 겨울외투부터 봄 외투까지 다 나와 있어 정리가 필요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조금씩하다보면 언젠가 다 끝나있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았다. 영원히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일은 없다. 우리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선형을 그리며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조금 더 나아지려는 우리들의 한 걸음이 빚어가는 그림이다. 


산더미 같던 설거지도 유튜브 틀어놓고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다 마무리 되었다. 냉장고도 어느 정도 정리했고 팬트리도 정리까지는 무리다 싶어 박스와 비닐만 정리하였다. 몸을 갈아 일을 해내던 시간들을 지나 지금은 알게 되었다. 무리하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오늘 힘내서 다 뒤집어 엎고 정리를 하는 것보다, 매일 10-15분씩 시간을 내 팬트리를 정리하고 책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것이 훨씬 더 지속가능한 건강한 삶이라는 걸 말이다. 


물론 체력이 되던 20대 시기에는 늘 노느라 바빠 벼락치기를 많이 했었다. 대학원 시절에는 매일 밤을 새도 안끝나는 일에 지치기도 했다. 마지막 직장생활을 하던 작년 여름까지는 해도 되지 않는 일들에 지쳐가기도 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대학원도 끝났고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매일 한땀씩 인형 눈을 꿰며 가내수공업을 하시던 어머니들 처럼 손목이 아프도록 키보드를 두드리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전에 번역일을 하던때와 정말 다른건, 결코 일을 미루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번역 알바를 할 때,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겨우 해서 넘기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면 망한다는 걸 알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할수 있는 분량을 잘라서 매일 매일 틈틈히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을 해낸다. 워킹맘에게 낭비할 시간이란 사치일 일뿐이기에 주말에도 틈틈히 일을 하며 마감시간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게 되었다. 나의 이런 매일 성실한 모습이 그져 놀라울 뿐이다. 어려움을 대면하는 것, 문제를 피하지 않는 것도 많이 나아지게 된 것이다. 


방학숙제나 과제, 업무를 시작하지 미루는 마음은 게으름도 있지만 완벽주의나 회피성향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고쳐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로 INFP인 나는 계획과는 전혀 먼 사람이다. 하지만 성향과 관계없이 삶의 원리는 단순하며 동일하기 때문에 성향에 맞지 않아도 익혀가기 위핸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청소하기 싫지만 그래도 생각한다. 딱 저 박스만 정리하고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정리를 시작하면 지저분한 현관이 보이고 현관을 청소하다보면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주 작은 것 그 한발이 2-30분의 청소시간을 만들어주고 정돈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게 정리하고 앉아 글을 쓴다. 이제야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매일 한줄이라도 적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대단한 글, 인기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들이 당연히 있다. 멋진 글들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런 풍선같은 마음대신, 오늘의 한줄을 기록하는 마음이 매일 글쓰기를 가능하게 할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전에는 큰 숲만 보고 살았다. 멀리 있는 결승점만 보고 살았다. 그렇게 보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 도착해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목표도 희미해지고 숲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나니 이제야 나무들도 눈에 들어온다. 전속력으로 달려 결승점에 도착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글 365개를 써야지! 마음먹은 것도 내려놓기로 했다. 그냥 매일을 기록하는 것, 한줄이라도 써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부담없이 이어가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글이 채워져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를 이제 다시 이어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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