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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Jul 15. 2020

[프롤로그] 카드값이 500이라니

소비단식일기 (1) 소비사회를 헤엄치는 한마리 연어

문자가 왔다.

"고객님의 카드 한도가 90%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고객님의 상향 가능 한도 및 신청 방법을 안내드립니다"

방금 6개월 할부로 그릇세트를 샀는데, 아니 그게 얼마나 한다고 90%나 한도를 초과하나. 나의 한도는 100만 원 인가? 심장이 쿵 내려앉으면서도 의아했다. 뭘 얼마나 샀는지 모르겠다. 다 필요해서 산건데도 왜 이렇게 카드값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90% 한도에 달했다는 소리에 도대체 한도가 얼마길래 이러나 싶어 문자를 열어보았다. 한도가 500만 원이었다. 90%면 450만 원을 내가 긁었다는 뜻이다.


"미쳤어"

카드내역을 확인하려다 그냥 카드 앱을 지웠다. 몇 달 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예금을 해지해서 카드값을 치르고 나서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책장에는 재테크 책만도 10권이 넘는다.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늘 마이너스 인생인 나는 이미 이것저것 다 해보았다. 예산도 세우고 신용카드도 몇 번이나 잘랐는지 모르겠다. 카드 실물이 없어도 모바일로 다 살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카드 자르는 건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아 모르겠다. 누워서 모바일 북클럽에 접속했다. 하도 책을 많이 사서 책값을 아껴볼까 하고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서비스에 가입했다. 물론 그 후로도 책은 계속 사고 있지만.


죄책감을 좀 덜어보고자 재테크 분야를 클릭했다.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빚을 다 갚았다: 마이너스 인생을 바꾼 생존 재테크' _저자 애나 뉴얼 존스 (한국경제신문)


아 얼마나 재테크 책 다운 강렬한 제목인가. 재테크 분야의 책들은 대부분 하는 이야기가 비슷해서 읽지 않아도 다 알 거 같았다. 결국 아끼라는 거 아니야? 통장 쪼개기 하고? 풍차도 돌리고?. 그래도 마음을 다잡자는 생각으로 책을 폈다. 이 작가는 얼마나 빚이 있는데 다 갚은 거야? 또 100억 빚 있는데 사업해서 다 갚고 부자 된 이야기면 보지 않으려 했다. 저자는 약 2500만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고 1년간의 소비 단식을 통해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직업까지 가지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 읽다 보니 저자가 한국의 카드 리볼빙과 비슷한 것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걸 보았다. 픽 웃었다. 나도 5년 전 즘에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얼마 후에 집안 경제를 파탄내고 한동안 리볼빙으로 빚을 갚아야 했다. 그 후 조금 나아지나 했지만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딱히 사치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늘 월급 전이면 돈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가족의 집은 나이로비에 있고 잠시 나는 아이와 함께 잠시 서울에 들어와 있다. 1년여간 밀린 일들을 해치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카드값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 일단 책을 계속 읽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소비 단식_Spending Fast은 말 그대로 소비를 중단하는 것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1년 정도 기간을 정해서 꼭 필요한 것, 예를 들면 생명유지에 필요한 음식과 옷, 난방비 등과 같은 것을 제외한 것에는 돈을 일절 쓰지 않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원칙들이 있는데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 나름의 원칙을 만들고 지켜나가기로 했다.


예전에도 많은 재테크 책들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나와 맞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 단식은 이미 나처럼 기존의 재테크 방법들에 실패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시작한 방법이다. 지켜야 할 게 많지 않고 단순하다.


남편의 월급날은 매월 20일이다. 나는 프리랜서라 수입이 들어오는 날짜가 일정하지 않았다. 나의 수입은 모두 비상금 통장으로 모으는 것으로 하고 남편의 월급으로 한 달을 살아내 보기로 했다. 2020년 2월 20일. 갑자기 시작되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준비 기간이 있었으면 아마 뭔가를 더 사긴 했을 거다. 원래 갑자기 시작해야 뭐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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