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박하 Aug 18. 2020

소비단식에도 요요가 오다니

소비단식일기 (6): 소비단식이 필요한 사람 vs. 그렇지 않은 사람

Photo by David Guenther on Unsplash


소비단식 첫 달인 2020년 2-3월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소비단식 선방을 했으나, 체중감량을 위한 요요뿐 아니라 소비단식에도 요요가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만 써라

한 달을 꼬박 쓰지 않고 지냈더니 내 머릿속 어디에 있는 줄이 뚝 끊어진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는 데다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 그런 것인가. 이유를 찾자면 끝이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요요가 휘몰아쳤다. 앞서 공유했던 칭찬 스티커를 붙인 다이어리를 보아도 3월 월급날 이후로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것이 보이지 않는가. 정말 아무 죄책감 없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매달 약 250만 원 정도를 카드값으로 쓴다는 것을 아래의 가계부를 통해 알 수 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카드를 긁으면 250만 원 정도를 쓴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500이 나온 달은 250만 원짜리 노트북을 질러서 그런 거였다... 고 변명을 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4월에 카드값이 적게 나온 것은 4월에 중순즘 가계부 앱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 구차하다)


이 시기는 사실 대학원 졸업 후 다채로운 삽질을 하다가 결과가 하나씩 나오며 좌절을 이어가던 시기와 맞물려있다. 브런치 작가도 탈락했었고 (소비단식 글로 도전했는데 탈락했었다. 특히 내 브런치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는 '카드값이 500이라니'라는 글과 몇 개의 글로 도전했었다) 여기저기 넣었던 원서들의 결과가 줄줄이 서류 탈락이었다. 정말 될 줄 알았던 세종시의 모연구소가 떨어지고 나서는 정신을 차리기가 더 어려웠다. 뭐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과하게 소비를 억눌렀더니 그동안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던 것을 아무것으로도 풀 수가 없어 펑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오래도록 다니는 병원에서는 줄여가던 약을 다시 증량하자고 하였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함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기까지 정확히 4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에 서류 탈락을 줄줄이 하고 100만 년 만에 텝스를 보았지만 목표 점수에 미달했고 (그새 시험이 더 어려워진 건가...) 해외파견 나간 남편은 코로나로 입국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나도 치료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이를 닦아주다가 어금니에 검은 줄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청난 죄책감과 금전적 손실을 동반한 치과치료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치과에 다녀와 울며 잠이 든 아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결정한 것은 당분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여러 가지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건강해야 했다.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트레스 주는 일들은 가급적 지양하기 위해서였다. 약을 그만 먹어도 되면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50여만 원이 찍힌 카드 명세서를 바라보며 다시 소비 단식을 결심했다. 하지만 소비 단식을 지난번처럼 극단적으로 하다가는 또 요요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드값이 더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이제 현실적인 방법으로 소비 단식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그리고 쇼핑 이외에 스트레스를 풀 방법도 생각을 해야 한다.


3월 21일부터 중단되었던 소비단식을 7월 18일에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소비단식은 남편 월급날인 20일부터 해야지라며 주말에 앞으로 소비단식을 하면 구입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물건들을 10만 원어치나 구입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라며 오늘은 먹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뼛속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특별한 다이어트가 없어도 일정한 몸무게와 사이즈를 평생 유지하며 살고 있다. 몇 kg 크게 늘어도 어 조금 쪘네하고 관리하면 금방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누구나 인생의 아킬레스건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정리해본 소비단식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필요한 사람 (다 제 이야기입니다...)

    꼭 필요한 대출 (주택담보대출, 학자금 대출, 병원비 등으로 인한 대출) 이외에 마이너스 통장이나 대출이 있는 사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물건을 산적이 있는 사람. 예를 들면 친구 만날 때 입을 옷이 없다며 만나러 가는 길에 새로 옷 사서 입고 가는 사람  

    필요 없는 물건을 계속 사는 사람 예를 들면 청바지가 11개나 있으면서 디테일이 다르다고 또 산 사람.  

    충동구매를 잘하는 사람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그냥 덜컥 뭔가를 사버린 적이 종종 있는가?)   

    택배박스가 쌓여서 뜯어볼 시간도 없으면서 계속 사는 사람  

    통장잔고나 카드값 고지서 들여다보는 게 제일 겁나는 사람   

    한 달에 얼마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사실 많은 분들이 소비단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엄두도 못 낼 만큼 정말 알뜰하게 잘 사시는 분들도 많다. 나는 뭔가 더 돈을 잘 벌기 위한 방법이나 재테크 비법을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비정상적인 쇼핑 습관을 바꾸기 위해 조금은 극단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쿠르지 영감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맛있는 것도 먹고 자신을 위해 좋은 구두나 신발을 사야 한다. 또 소중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인생을 너무나 즐겼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

    필요한 것 이외에는 특별히 소비욕이 없는 사람 (이게 가능한가...)  

    이미 잘 관리하면서 대출도 잘 갚고 저축도 잘하시는 분   

    5년 전 배우자가 사준 옷이 특별히 낡지 않았다면 계속 입는 사람 (남편...)  

    한 달 살기 이미 빠듯한 취준생, 직장인, 주부 등등  

    이제 벌만큼 벌고 쓰면서 쉬고 싶으신 분 (부럽...)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   

    인생에 과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 (직장인들이여)   


몸과 마음이 아플 경우 소비단식을 시도하는 것은 개인차가 예상된다. 아프기 때문에 단식으로 회복될 수 있고 악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단식이 모두의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듯 말이다 (당뇨 환자가 단식을 하면 저혈당 쇼크가 온다). 나는 1년이 넘게 우울&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시도가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까.

이전 05화 소비하지 않음의 기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