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박하 Aug 26. 2020

소비 단식에도 치팅이 필요해

소비 단식일기 (7): 추가된 몇 가지 원칙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알게 되는 가장 반가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치팅데이 (cheating day)"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다이어트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있도록 해준다. 물론 당연히 치팅데이라고 폭식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 나는 체중조절 기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중식, 분식, 햄버거, 피자를 돌아가면서 먹었는데 살이 하나도 안 빠졌었다 (...) 


소비단식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나를 위한 것을 사지 않는다 (남편과 아이는 제외)
2. 생필품은 산다. 단, 정말 다 쓰고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하나만 산다. 

3. 누군가를 만날 때는 산다. 친구를 만나서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는 당연히 소비한다. 
4. 혹시라도 나를 위해서 소비를 했다면 반성하고 즉시 바로 다시 무소비에 돌입한다.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도록 하자.


하지만 생필품 이외에 다른 것을 살 수 없으면 자꾸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것도 생필품이지 뭐" 


내 뇌는 "필요"를 만들어 내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사고 싶은 것은 뭐든지 꼭 필요한 이유들을 열개도 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도 싱크대 정리를 하다가 수납용기들이 필요한 것 같아서 거의 10만 원어치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결제 막판에 가까스로 멈추었다. (약간 결제를 어렵게 하려고 앱을 하나 지웠는데 효과가 있다) 또 아이가 "엄마 색연필이 안 나와요"라고 말하면 "어, 엄마가 사줄게"라며 쿠팡을 열어 당장 로켓 배송을 주문하려고 시도한다. 이번에는 죄다 10개 묶음밖에 없어서 구매를 하지 못했다. 그새 아이는 다른 색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 없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사들이다 보면 리락쿠마 라벨기도 사고 (아이 어린이집 가기 전에 한번 썼음) 호피무늬 원피스도 사고 (한 번도 안 입음) 펜도 20자루씩 (국산이니까) 사들이는 것이다. 장은 봐도 봐도 끝이 없는 것 같다. 양문형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하나가 꽉 차있는데도 뭔가 부족한 거 같다. 트러플 오일도 사야 하고 무화과잼도 사야 할 것 같다. 


치팅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래서 치팅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직접 결제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이러다가 언제 할부로 결제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생필품 이외의 사치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약간의 여유를 두기로 했다. 일단은 한 달에 5만 원으로 정했는데 너무 힘들면 조금 늘리고 덜 필요하면 저축할 예정이다. 어젯밤에도 나는 프랑스어 강좌를 12개월 할부로 결제할 뻔했지만 잘 참았고 모나미 만년필이 가지고 싶은 것도 잘 참았다. 마켓 컬리 장바구니에 산더미처럼 담아둔 것들도 결제하지 않았았다. 일주일에 한 번만 온라인으로 장을 보기로 결심했기에 이번 주 금요일이 될 때까지 잘 참았다가 뭔가를 그때까지 사고 싶은 걸 살 예정이다.  


정리를 시작했다


또한 소비에 대한 에너지를 어디론가 돌리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은 냉장고를 정리했다. 오래된 모차렐라 치즈와 빵들을 버렸다. 차돌박이를 발견해서 점심에는 아이와 함께 구워 먹었다. 냉동식품이 한 바구니인걸 확인했다. 지난주 구입한 베이글도 한가득이고 잼도 4종류나 있다. 소비 단식을 하려면 집안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결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주사용 카드를 체크카드로 바꾸고 하나 남아있는 신용카드는 어디 깊이 넣어두었다 (하나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바일 결제 앱 중 신용카드가 등록되어 있는 앱을 다 지워버렸다. 일단 결제의 허들이 있으면 덜 쓰게 된다. 계좌 잔액이 떠도 덜 쓰게 된다. 많은 업체들이 왜 00 페이를 도입하는지는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손하나 까딱하면 결제가 이루어지면 소비가 더 가벼워지게 마련이다. 카드값은 무거워지고. 


그래서 추가된 몇 가지 원칙들. 


5. 한 달에 일정 금액은 사고 싶은 걸 사자

6. 정리를 하면 절약이 쉬워진다. 

7. 결제가 어려울수록 자제가 잘 된다. 


소비 단식 D-325 (2021/07/16)

중간에 3개월 무너지는 바람에 기간이 다시 늘어났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기로. 





이전 06화 소비단식에도 요요가 오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