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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는 어려울수록 좋다
나는 최신 결제 시스템 애용자이자 전도자이다. 인터넷 쇼핑이 대세였을 때는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모바일로 넘어와서는 온갖 페이들을 다 꿰고 살았다. 숫자 6개만 누르면, 혹은 그냥 결제하기만 누르면 결제가 되는 시스템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전파한다. 엄마와 시어머니에게도 갖가지 페이에 대해서 알려드렸다. 다들 고맙다고 하셨다. 물론 그분들은 가계부를 적어가며 알뜰하게 쓰시는 분들이라서 나의 충동구매와는 거래가 멀다. 내가 문제다 내가. 밤이면 밤마다 쿠*이니 네*버를 열어서 필요한 게 없나 뒤적이다가 필요한 이유를 찾아서 사곤 한다. 가격이 5만 원이 넘으면 할부를 한다. 그렇게 쌓인 할부액이 앞으로 한 달에 50만 원씩 나갈 예정이다. 앞으로 신용카드를 하나도 쓰지 않아도 5개월은 더 내야 한다.
소비 단식을 시작하기로 하고 핸드폰에 깔려있는 모든 결제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한 앱을 다 지웠다. 카드가 등록되어 있는 쇼핑몰에는 체크카드 하나만 남기고 다 지웠다. 특히 *팡은 얼른 지웠다. 나는 그곳에서 400번이 넘는 로*배송을 이용했다. 물론 이게 처음은 아니다. 늘 지워다가 또 깔았다. 꼭 필요한 살 것이 생겨서였다. 6번 실패해도 7번 하고 또 8번 해보려고 한다. 될 때까지.
소비는 미룰수록 좋다
이렇게 결제를 어렵게 하자 당장 내일 바로 배송되는 것들에 대한 금단증상이 나타났다. '어 물티슈가 하나밖에 없는데 내일 배송해야 하는데, 어 내일 당장 아이 색연필이 있어야 하는데, 어 뭔가 필요한 게 없나?' 불안했다. 하지만 내일 뭔가가 바로 오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물티슈 하나로 1주일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물티슈를 다 쓰고 나서는 집을 뒤져서 사은품으로 받은 물티슈를 다 찾아 썼다. 그리고 엄마가 물티슈 대신 쓰라고 만들어서 가져다준 작은 면수건들을 물에 적셔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물티슈를 사지 않고 살고 있다. 쓰레기도 만들지 않아서 작은 죄책감 하나도 없어졌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못 가면서 일주일에 한통씩 플레이도우를 쓰며 놀고 있는 우리 집 어린이에게 밀가루와 소금물로 플레이도우를 만들어주었다. 만드는 것부터 함께하며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노니 아이가 정말 좋아했다. 플레이도우는 다 좋은데 플라스틱 통이 항상 너무 많이 나와서 걱정이었는데 만들어주니 쓰레기가 없어서 좋았다. 물론 만든 플레이도우는 밀가루가 많이 날려 청소기를 더 돌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소비 단식을 하니 요즘 떠오르는 '제로 웨이스트'도 같이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왠지 뿌듯하다.
그리고 체크카드 안에서만 결제를 해야 하니 할부로 사야할만큼 감당이 안되는 것은 살수가 없게 되었다. 굉장히 당연한 말인데 그 전에는 당연한 말이 아니었다 (아마 공감하는 분들이 좀 있으실것이다). '한달에 3만원이면 뭐'라며 할부를 척척하며 사다가 한번에 20만원짜리 한번에 결제할 수는 없었다. 세탁기나 쌀처럼 없으면 죽을만큼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하루밤만 참아도 일주일을 더 참을 수 있다. 일주일을 참으면 한달을 참을 수 있고 한달을 참으면 장바구니에서 삭제할 수 있다.
'어차피 살 거 빨리 사자'가 내 쇼핑 모토였는데 '소비는 미룰수록 좋다'라니.
소비 단식 2달째가 되어가니 나 자신에게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