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1일차
이번 봄은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중간 기착지에 들른 KTX 같다. KTX는 도착과 동시에 바로 출발을 준비한다. 벚꽃을 틔우기 위해 나뭇가지가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것과 꽃잎을 떨구기 위해 쉬지도 않고 낭창낭창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모습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 그런 봄.
사람들은 꽃에 경탄하지만, 기실 가장 수고하는 것은 끊임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나뭇가지다.
그런 봄, 4월 9일(토) 첫 수업을 들었다. 7년이 된 목공방은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소담스러운 벚꽃과 개나리를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나무에만 집중하기로 했으면 잠시 배제하는게 오히려 맞다고 생각한다.
용도에 따라 적절하게 잘 구획된 공간, 보기 좋게 진열된 도구들, 보통 첫인상이 험해서 주눅들기 마련인 목공 장비들 역시 그런 느낌을 피하기 위해 색감과 모양세를 세심하게 신경써서 선택한 것 같다. 내가 이 목공방을 선택한 이유다.
첫날은 이론 수업을 들었다. 가구 제작에 사용되는 나무들의 종류와 특징, 수축됐을 때 나무가 휘는 모양, 제재(sawing , 製材)에 관련된 몇 가지 방법을 알려주셨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배울 때가 가장 즐겁다. 나의 능력을 보여주거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몇 안되는 순간이라서.
심재와 변재. 나무를 단면으로 잘랐을 때 가운데부터 진한 색깔을 보이는 부분을 심재, 더 바깥에 색이 연한 부분을 변재라고 한다. 심재는 더 이상의 성장이 필요하지 않아 생장을 멈춘 영역이고, 변재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생활(물을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들이 마시고 산소를 내 뱉는 등)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어른이 된 심재는 꽤 단단하고 아직 성장통을 앓고 있는 변재는 상대적으로 연하다고 한다. 만약 가구에 진한색과 연한색을 모두 사용하고 싶다면 심재와 변재를 잘 활용해야 한다.
순결과 엇결. 기계를 사용해 나무를 깎을 때는 결방향을 신경써야 한다. 강력한 기계의 힘을 믿고 함부로 나무를 다루면 기계가 나무의 저항을 받아 튕겨져 나오는 kick back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무를 제재할 떄는 순결 방향을 꼭 확인하고 해야 한다. 다만 나무는 자연물이다보니 이 결방향이 복잡하게 구성되어있어 순결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결국 경험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재를 기계로 잘라보았다. 긴 목재를 3등분하는 작업인데 그냥 숭덩숭덩 자르면 안된다. 목재는 수분을 흡수하여 휘게 되는데 볼록한 부분이 아래로 가도록 하고 잘라야 한다. 만약 그 반대로 할 경우 기계의 톱날이 나무 사이에 끼게 되거나 kick back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자를 때도 3번에 나누어서 조금씩 일정한 깊이로 잘라야 한다. 한번에 가려고 하면 목재의 단단함이 저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목공은 나무와 기계를 모두 잘 다뤄야 하는 과목이다. 선생님이 목재를 남은 20분 동안 나무를 자르는 것을 알려주시겠다고 했을 때, '그게 20분이나 걸리나?'라고 내심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정도가 걸렸다. 나무를 옮기는 법, 나무를 어느 방향으로 놓을지, 나무를 어떻게 자를지, 기계를 만질 땐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기계를 정석대로 사용하는 법은 무엇인지. '자른다'라는 행위 뒤에는 버려지는 나무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봄.
겨울에서 봄으로 바뀐 모습은 너무 명확하다. 그래서 매우 단순한 과정처럼 보인다 초록이 돋아나고 꽃이 피면 그게 봄이니까. 하지만 그 뒤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방정식이 적용되고 있을 것이다 봄이라는 정답을 도출하기 위해서.
아직은 내가 무엇을 만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 옷에 가득 밴 나무 냄새는 봄에도, 여름에도 그리고 다시 봄에도 계속 남아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