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의 열정감 페이 → 2000년대생의 사명감 페이
2010년대 열정 페이의 종말
바야흐로 2010년대의 대한민국은 열정페이의 시대였다.
열정 페이란 말 그대로 ‘열정으로 급여를 대신한다’라는 뜻으로,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열정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에게 지불하지 않으려는' 사회 현상에 관한 용어이다. 일본에서는 보람착취(やりがい搾取)라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음악인이자 작가인 김간지는 인디 음악 전문잡지인 '칼방귀' 2012년 여름호에 <열정 페이 계산법>을 올렸는데, 해당 계산법에 따르면 “열정이 있다”, “재능이 있다” “재주가 있다”는 곧 ‘= 돈을 적게 줘도 된다’라는 공식이 된다. 이 공식에 따른 예시는 “너는 원래 그림을 잘 그리니깐 공짜로 초상화를 그려 줘라”, “너는 어차피 공연을 하고 싶어 안달 났으니깐 공짜로 공연하라. 너는 경력도 없으니깐 경력도 쌓을 겸 내 밑에서 공짜로 엔지니어 해라” 같이 말이다.
2010년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 열정 페이는 사회 전반 곳곳에 깔려있었고, 그 사례도 다양했다. 2010년에 출간된 ≪인간의 조건≫에서는 최저시급을 주지 않기 위해서 집단으로 시급 담합을 하는 지역 편의점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정규직에서도 무한대로 계속되는 야근에 ‘야근수당’을 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저변에 깔려있지 않았다. 플랙서블(Flexible) 근무제도를 갖췄다고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놓은 어떤 대기업에 들어간 신입사원은 “출근시간은 고정이고, 퇴근시간만 유연하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총각네 야채가게로 유명한 이영석은 ≪인생에 변명하지 말라≫라는 자신의 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항상 “혹시 급여를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통해서 직원의 열정을 시험했는데, “월급은 얼마예요? 쉬는 날은 언제예요? 주 5일제인가요? 휴가는 어떻게 사용하나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을 똥개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 개개인의 인권의 신장을 위해 일하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2014년까지 영어가 능통한 엘리트 인턴을 무급으로 운영해 왔다. 국민들에게 인권 감수성을 챙겼지만, 자신의 인턴에게는 인권 감수성이 없었던 것이다.
90년대생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2010년대의 가장 큰 흐름은 이 ‘열정페이와의 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열정페이에 대한 반발은 2010년대에 발간된 저작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히노 에이타로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서 ‘우리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대가로 약속된 것은 월급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일을 일답게 해주는 기본은 ‘회사에 제공하는 노동’그리고 그 대가로 받는 ‘월급’이라는 두 가지 요소일 뿐이다. 보람은 어디까지나 이 두 요소를 충족한 후 사람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덤’ 일뿐이라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적법한 노동에 적합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 열정페이는 고용주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32조와 근로기준법 제77조를 위반하는 반헌법적(혹은 불법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는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인한 조직문화의 전환이기보다는 위법한 행위를 적법한 행위로 돌리는 것이었다.
2010년도 ‘열정페이의 투쟁’은 나름의 성과를 보였다. 이는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관련 창작 콘텐츠의 범람 등이 있겠지만, 정작 이 문제를 가장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노동법의 변화였다.
그것은 바로 2018년부터 점진적으로 시행된 ‘주52시간 근로제’다. 본래 ‘주52시간 근로제’ 역할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던 대한민국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진행된 것이고, 2018년 이후 대한민국 노동시간이 연평균 2.2%가 감소한 만큼 분명한 본래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지만, 노동 시간 감소에 있어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록 ‘주52시간 근로제’가 노동 시간을 OECD 평균까지 줄이는 성과를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에게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인식을 주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것은 바로 “야근은 원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노동으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라는 점, 즉, ‘근무시간이란 원래 무제한이 아니라, 리미트가 있다’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각인시켜 준 것이다. 이로 인해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과거의 굴레에서 항의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준 것이 그보다 더 큰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 결과 2018년 1조 6,472억 원에 달하던 임금체불 규모는 2022년 1조 3,472억으로 18.2% 줄어들고, 피해근로자는 2018년 351,531명에서 2022년 237,501명으로 32.4%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0년대 열정 페이의 종말
2010년대가 열정페이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면, 2020년대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저항이 생겨났다. 그것은 바로 ‘사명감 페이’에 대한 저항이다.
사명감(使命感)은 사전적으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란 뜻으로, 책임감과 비슷한 어감의 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 ‘일에 대한 완료’라기보다는 ‘업 전체 역할에 대한 완수’라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감은 단순히 전문적(프로페셔널)으로 일을 한다거나, 열정적으로 한다는 개념을 넘어선다.
사명감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위치로부터 주어진 명령을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로 인한 사명은 ‘단순히 돈을 받고 수행해야 하는 업무’라는 범위를 넘어선다. 내가 특정 직군/직무에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돈을 받고 집에 가는 일’이라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닌, 내가 이 일을 맡은 이상 반드시 정해진 일을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어진다. 가령,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라는 단순히 ‘국가를 고용주로 일하는 자’가 아니라 ‘공무원 헌장’에 적시된 바와 같이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명은 ‘국민의 봉사라는 굳은 각오와 다짐 그에 따른 사명’을 이행해야 해야 한다.
즉, 보통 ‘사명감’과 직결되는 직업들은 경찰, 소방공무원, 군인, 교사, 의사와 같은 공직 혹은 특별 직군에 해당한다.
사명감은 숭고함과 연결된다. 사명감이 있는 직군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군이 아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사회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역에서 일한다. 이들이 일하는 직군은 보통 공적인 역할이 부여된다.
열정페이가 ‘더 일을 하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돈을 적게 받고 일하라’로 요약할 수 있다면, 사명감페이는 ‘업을 완수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일해라’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가 실정 노동법을 위반할 수 있는 부당한 요구였다고 한다면, 후자는 그 자체로 법을 위반하는 요구라고 볼 수는 없다.
공적인 성격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사명감을 요구하는 일이 비이성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20년대의 현생을 사는 2000년대생들에게 이러한 ‘사명감 페이’가 결코 합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적절한 처우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사명감을 가진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지만, 보통 이 사명감이라는 게 강조되는 상황은 온갖 불합리한 대우란 대우는 다 하면서 때려치우지도 말고 불만도 표하지 말고 계속 노예처럼 일이나 쳐하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2000년대생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 철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이 맡은 곳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이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이를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은 행위로 만들어냈다. 곧, 사명감으로 ‘더 적극적인 업무 태도’를 요청하는 일종의 행태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난 곳은 ‘의료계’이다.
예비 의사와 현직 의사 사이에는 유행한 신조어 중에서 ‘피안성 정재영’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의 줄임 말으로서, 경쟁이나 사명감보다 소득, 워라밸을 중시하는 요즘 의료계의 추세가 반영된 말이다.
이와 반대로, 의료계에서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기피과’로는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등이 있다. 이러한 과들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과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욱 요구되는 과로 인식되어 있다.
이러한 지금의 추세를 히포크라테스 선언과 의사의 사명감을 들먹이며 비판을 할 수 있다. 그 비판 또한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으로 이러한 추세를 막아 세울 수 있는가? 지금의 현실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초저출산 기조 현상과 함께 가장 큰 진료소가 사라지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도 ‘사명감페이’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23년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사과>의 자리에서, 진료비가 30년째 동결 중이고, 의료 소송이 남발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 이상 아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만으로는 버틸 수 없기에,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사명감페이 거부 현상’은 교육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사명감으로 교직이 유지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제주도에서 15년째 초등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K 부장교사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최근 2~3년(2020~2022년)동안 급격하게 교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교실에서 단체 면학 분위기를 저해하는 일부 학생에게 지금은 선생들이 제대로 된 지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훈육을 하기 위해 구두로 ‘정정 지시’를 내린 많은 젊은 선생님들이 아동학대라는 명목으로 조사당하고, 실제로 고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있어서, 문제 학생들에게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22년 한 유명 웹툰작가 아이를 훈육하다가 ‘아동학대’ 명목으로 고소당한 경기도의 한 특수교사의 사연은 이를 대표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사명감’으로 움직이는 분위기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과거에 없던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매년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낳고 있다.
2022년에는 서울 강남권이 모조리 잠기는 침수를 겪기도 했고, 2023년 일어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는 무고한 시민 14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이러한 재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천재지변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하늘에 묻기도 하지만, 사전에 사고 원인을 제거하고 재빠른 대응으로 국민의 생명을 살리지 못했기에 인재(人災) 혹은 관재(官災)라는 비난이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난은 재난 안전 부서 책임자들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국민의 목숨과 안전을 책임지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안전 부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임을 안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중요한 ‘사명’을 지닌 재난 안전 관련 부서는 신규 공무원들이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기피 1순위 부서’가 되었다.
(※'사명감 페이가 없어진 세상의 단상'은 다음 주 연재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