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문해력보다 더 우리에게 요구되는 능력 [언해력]에 대하여
최근, 강남역을 지나가다가 기둥 쪽 디지털 컨시어지에서 아래의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지난 6월부터 진행 중인 "구하자! 위기의 어휘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 중인 <KBS 한국어 캠페인>으로, 이는 마치 최근에 '사흘과 나흘'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판받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갱생시켜야 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논란이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죠.
‘심심(甚深)한 사과’를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과'로 오독한다거나, '무운(武運)을 빈다'라고 격려한 일을 '재수가 없었으면 한다'로 읽거나, 한 래퍼가 신곡의 가사로 '하루 이틀 삼일 사흘'을 쓰면서, '사흘'을 4일로 인식한 일 등등 문해력 논란의 사례는 끝도 없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젊은 세대는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믿음이 진짜 사실에 부합하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사실과 상당 부분 거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데이터로 봤을 때는 그렇죠.
먼저, 교육부(ft. 국가평생교육진흥원)가 2014년부터 3년 주기로 발표하는 '성인문해능력조사'가 있습니다. 2021년에 발표한 3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8~29세의 비문해 인구(초등학교 1~2학년 수준)는 고작 4.7%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60대 35.6%, 70대 58.9%, 80대 이상이 77.1%로 나타남으로써 연령층이 높을수록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들이 1년 동안 읽은 책의 평균이 34.4권으로 성인(4.5권)보다 8배 수준으로 높으니, 책을 안 읽는다는 말도 (동일 시점으로 봤을 때는) 타당하지 않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이 브런치의 주체인 '2000년대생'들이 속한 청소년들의 문해력은 어떨까요?
만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2018년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읽기 점수 평균은 514점으로 조사국 중에서 5위에 해당했으며, OECD 평균 점수 487점 보다도 27점이나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적 비교를 해봤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래프를 살펴보면, 2006년 조사 이후 점차적으로 '읽기 하위 성취 비율 (2수준 미만)'이 높아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저 읽기 수준인 '1수준'의 비율이 2006년 5.7%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15.1%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젊은 청소년들의 문해력(읽기) 수준은 평균적으로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하위 수준의 학생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 비해 문해력이 떨어지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쉽사리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이는군요.
결국,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말은 '문해력이 떨어진다'나 '어휘력이 떨어진다'라는 기성세대의 평가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사실이기보다 기성세대가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단어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상대적인 평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련해서, 저의 과거 경험 하나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자, 이 글을 읽는 브런치 독자님들 중에서 위의 적힌 한자를 다 읽을 수 있는 분 계신가요?
읽을지 모르는 분들에게 누군가는 '한자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군'이라고 훈수를 두실수도 있겠네요.
네! 이것은 바로 <24 절기>를 한자로 적은 것입니다.
24 절기를 한글로 바꾸면, 위와 같이 변환이 되겠군요.
제가 10여 년 전, 회사 선배들과 하는 카톡 단톡방에서 언젠가 5월 말 '소만'이 되었을 때, "어? 근데 소만이 뭐였더라?"라는 지나가는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카톡을 본 어느 한 선배님께서 "야~너 소만도 모르니? 너 대학 나온 거 맞아? 이렇게 무식한 세대가 있다니"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자를 떠나서, 24 절기의 뜻을 몰랐다는 의미로 10년 전에 "문해력이 떨어지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이죠.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일부 문해력 논란 중에는, (제가 겪은 것과 비슷한) 과한 사례가 등장하곤 합니다.
'삼명일(三明日)'이라는 단어 논란이 대표적이죠. 삼명일은 '모레의 다음 날' 즉, '3일 뒤(글피)'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저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윗 세대 누군가는 알고 있다고 해서, 지금의 세대가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사흘과 나흘'을 헷갈렸던 적이 없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중학교 때 헷갈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한 번 배운 이후로 실수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문해력 논란'에 나오는 단어들도 어찌 보면 그들이 단 한 번도 살면서 보지 못했던 어휘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 단어를 한 번 입력한 후에는 실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요.
제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문해력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KBS 한국어 캠페인> "구하자! 위기의 어휘력"에 나온 위 사례를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만약, 위와 같은 동일한 "금일 중식은 미정이야"라는 회사 동기가 톡을 던졌을 때, 부득이하게 회사 앞 식당 중에서 '미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점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혼란이 있을 수 있겠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른 의미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마침 미정이 있었네?)가 아닌 일반적인 사례로 생각해 봤을 때, 누군가 "금일 중식은 미정이야"라고 했을 때, "뭐라고? 금요일에 중국집 '미정'에서 먹자고?"라고 뜬금포를 날렸더면 이는 문해력보다는 다른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문해력이 아닌 언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문해력이 문자 그대로 '문자를 해석하는 능력'이라면, 언해력은 '상대방의 말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금일 중식은 미정이야"라고 말했을 때, (회사 앞에 미정이라는 음식점이 없다면) 미정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아직 점심식사 장소나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맥락을 해석할 수 있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금요일을 '금일'이라고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금요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의 많은 부분이 한자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같은 음이라고 상황에 따라서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이 이어지는 맥락에 의거하여, 단어를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왔죠. 이것이 바로 애매한 '아날로그적 신호'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문자 그 자체를 해석하는 능력'은 디지털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이기에, 아마도 (지금은 모르더라도) 데이터가 입력되면 향후 처리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신호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의 시도가 어렵죠. 바로, 이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이 앞으로 더 요구될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