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집왕 Oct 09. 2023

사명감 페이가 없어진 세상의 단상

영혼 없는 새로운 세상의 뉴노멀

2023년 여름 신림역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났고, 곧이어 분당 서현역에서 모르는 행인들에게 무참히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 이후 전국의 ‘살인예고글’이 어이짐에 따라 국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치안을 책임지는 윤희근 경찰청장은 무차별 흉기 난동 범죄를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대응하기 위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다. 흉기 소지 범죄에는 경고 없이 곧바로 실탄 사격을 허용하고, 적극적인 범인 검거로 인한 행위에 대한 면책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반응은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2000년생 임모 순경은 이와 같은 경찰청장의 대응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흉악 범죄인에게 경고 없이 맘대로 실탄을 쏴서 남는 것은 소송당하는 일 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들에게도 정상 참작을 해주는 원칙이나 법은 실제로 무용지물이니 믿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맘대로 실탄을 사격하나요?”


물론, 이러한 생각을 갖는 것은 임모 순경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한 경찰청 소속 A씨(닉네임: 회사생활)는 “'칼부림 사건? 국민은 각자도생해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앞으로 묻지마 범죄 등 엽기적인 범죄가 늘어날 것 같은데 경찰은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며 "국민은 알아서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장의 이유로 경찰이 과거에 과잉 진압을 이유로 소송에 휘말린 사건을 언급했다. A 씨는 "낫 들고 덤비는 사람한테 총 쏴서 형사 사건은 무죄가 났는데도 민사소송에서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며 "또 칼로 피해자를 찌르고 도망간 사람에게 총을 쐈는데 형사는 무죄가 나왔지만, 민사로 7800만원을 배상한 사건도 있다. 몸싸움하는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정확하게 허벅지를 쏘지 않으면 잘못이라는 이유에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남은 2020년대에 겪게 될 미래의 모습은 ‘사명감 가져야 굴러가는 곳에서 사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불모의 대지’로 바뀌게 될 것인가?


아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명감이 없이 일하는 곳이 어떻게 제대로 흘러가나요?’라고 반문을 하겠지만, 즉, 사명감이 없다는 것이, 자신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본적인 기능을 더 충실하게 유지할 이다. 단지, 그 이상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이다.      


가령, 미래에 ‘사명감이 없는’ 소아과 의사가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눈앞에 있는 아이의 증상을 대충 보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철저하게 치료라는 본질에 집중하여 오차 없는 치료행위를 진행할 것이다. 하지만 치료가 끝나고 아이의 주 증상과 관련 없는 아이의 성장(EX>“또래에 비해서 우리 아이의 말이 늦는데 어떻게하죠?”)과 관련한 질문에 추가적으로 친절하게 대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명감이 다소 부족한’ 교사가 있더라도, 그가 여전히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교육의 목적에 맞게 그들이 담당하는 학생에게 교육목표에 맞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학부모들에게 학생지도에 맞는 정확한 안내를 서면으로 적재적시에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제멋대로 구는 학생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쓴소리를 더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해진 질문 범위를 넘어서는 학부모의 질의 혹은 제안에 더 이상 응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사명감이 떨어지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공무원 헌장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청렴을 생활화하고 규범과 상식에 따라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의미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상냥한 표정을 짓고, 친절서비스 정신을 제공할 이유를 찾아주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사명감은 없는 세상’을 나쁘게 보든 좋게 보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를 어떤 식의 감정을 보고 바라보든 이 세상은 이미 우리 시대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갈 것이다.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유지되어 온 곳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더이상 지원을 하지않아 구인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사명감을 함께 요구받는 의사나 판사와 같은 직업들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사명감에 대한 그 이상의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이 높은 사명감을 요구받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부족했던 직무들은 사람을 구하기 힘들 것이다. 가령, 사람의 목숨을 다루기에 높은 사명감이 요구되지만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수련기간이나 높은 대우가 부족했던 간호사 군은 빠르게 인기직군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다. 여기에 교사 직군도 포함될 것이다. ‘스승’으로서의 높은 자긍심으로 교육적 사명감을 유지했던 곳들도 곧 피켓을 들고 사람을 구해야 할 처지에 다다를 것이다.      


하지만 부디 오해하지 말자, 사명감이 없는 세상이라고 해서 엉망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기 자신이 맡은 일을 사명감은 없지만 충실하고 책임감 있게 마무리만 한다면 적어도 업무수행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명감은 없지만 기본적인 기능을 충실한’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에버랜드 [소울리스좌]를 들 수 있다. 2022년 에버랜드 인기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는 한 여성의 영상이 인기를 얻었다. 영상 속 근무자는 퇴근만을 기다리는 듯한 피곤하고 영혼 없는(Soulless) 눈빛으로 랩을 통한 안내를 함에도 목소리만큼은 생기발랄하기에 대조되는 모습이 직장인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으며, 그 와중에 눈동자를 움직이며 승객의 안전을 확인하며 적당한 텐션으로 귀에 쏙 들어오는 속사포 랩을 내뱉는 베테랑의 모습이 화제가 되어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울리스좌라는 명칭답게, 그에게서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충성을 하거나 자신의 안내 역할에 일종의 ‘숭고함’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수없이 많은 반복 연습 혹은 수행으로 이룩된 득도 수준의 자신의 업을 연마했고, 그를 통해 자신의 안내역할을 100% 이상의 숙련도를 발휘하여 진행하고 있다.


나는 이제는 '사명감(使命感)'이 대체 뭔지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공적영역과 민간영역 두 영역 모두에게 경험을 가진 現 해양수산부 인재개발원장 양병채 원장은 사명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사명감이란, 결국 주어진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감의 완수는 자신의 일을 완수하면 그만인 것이다.
(특히 공무원 사회에서는) 일과 사명감을 마치 분리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일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한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그저 '자신의 일을 완료하는 책임'을 사명감으로 동격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껏 '사명(使命)'을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것을 넘어서, 필요 이상의 의미부여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이 사명감이라면 대체 그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며, 그 보상은 어떻게 책정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이 사명감을 계속 문제없이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전 34화 사명감 페이의 종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