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자막을 키고 우리말 영상을 시청하는 세대별 조사결과
넷플릭스와 같은 OTT서비스의 전 세계적 트렌드 중 하나는 한국의 영상물, 즉 ‘K-콘텐츠’의 글로벌적 인기라고 할 수 있다.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에서 1위를 달성한 최초의 작품이 된 ≪오징어 게임≫을 비롯하여 ≪더 글로리≫, ≪지금 우리 학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의 많은 수의 K-콘텐츠가 글로벌 인기를 계속해서 구가하고 있다.
넷플릭스 공식 뉴스룸은 2022년 전 세계 회원의 60%가 드라마 혹은 영화 등 한국 콘텐츠를 한 편 이상 시청했다고 밝혔다. 이 말은 10명 중 6명의 글로벌 시청자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자들이 K-콘텐츠의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막 기능’이 필수적이다. 이는 우리가 영어로 된 콘텐츠를 즐길 때 한글 자막을 켜고 보는 일과 같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23년 1월 한국어 영상을 볼 때도 자막을 키고 보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화두를 꺼낸 적이 있다.
2001년생 대학생 안지혜씨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안지혜씨는 평소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꼭 한글 자막을 켜놓고 영상을 시청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20년 넘게 한국에서만 살면서 모국어가 익숙한 그가 굳이 한글 자막을 켜놓고 볼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도 자막을 키고 계속 영상을 시청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구독해서 시청한지 3년째라고 하는 그가 처음부터 자막을 킨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사실, 처음부터 한글 자막을 쓴 것은 아니였어요. 제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어느 시점부터, 저는 한국 영화를 볼 때 조차 [한글 자막]을 ON 상태로 기본적으로 맞춰놓게 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이런 제 상태를 인지하고 국내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의식적으로 자막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시청을 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어요”
이 말은, 한글 자막을 선호해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자막을 키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난 수 년간의 무언가가 그녀의 시청 습관을 변화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영상 시청 습관의 변화가 단순히 안지혜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현재 OTT서비스의 관람 형태가 익숙해진 지금 이 시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변화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말 한국에서도 세대별로 자막 기능을 사용하는 비율의 차이가 날까?
2023년 4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AI변화연구소가 오픈서베이에 의뢰하여 진행한 [구독형 OTT 영상 콘텐츠 이용 행태 조사]에서 평소 한글 자막을 켜고, OTT를 시청하는 한국인은 10명 중 5명(52.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명: 구독형 모바일 OTT 영상 콘텐츠 이용 행태 조사/ 조사기간: 2023.04.21~23 응답수: 500명(10년 단위 세대별 100명) / 조사방법: 오픈서베이 패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응답 수집) / 표본오차: ±2.87%P *(80% 신뢰수준)]
단지, 세대별로 큰 차이를 보였는데, “평소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시청할 때, 한글 자막을 이용하는가?”라는 질문에, 60년대생의 ‘그렇다’라고 대답한 긍정 비율이 30%만에 불과했던 반면, 2000년대생의 긍정 비율은 무려 74%는 달했다.
2022년 미국의 Preply가 미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미국인들이 얼마나 자주 영상 자막을 사용하나?(How often do Americans use subtiles?)”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타난 비율과 유사한 수치이다. 당시 조사 대상 중 절반(50%)에서 자막을 사용한다고 답했는데, 동일한 질문에 대해서 한국인 52%가 그렇다고 답을 하였다.
2022년 개봉한 영화 <한산>의 감독님께서 영화 중반 한글자막을 영화에 이번 시도는 "전쟁의 밀도감을 높이기 위한 결단이었다"라고 말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 창작자 입장에서 자신이 만든 영상의 몰입감을 방해하는 자막을 입히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창작자의 고민이 어찌되었든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지난 1년은 내가 예견한 결과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먼저, 2023년 SBS가 일반시청자를 대상으로 드라마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시작했다. '법쩐'과 '트롤리' 재방송부터 자막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 '모범택시' 시즌2의 경우는 전편 재방송 모두 기본으로 자막이 깔려서 송출되었다. 이처럼 지상파 방송에 한국어 자막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한국 최초의 드라마 '천국의 문'이 1956년 전파를 탄 뒤 지상파 제작 역사 67년 만에 처음이다.
지상파에서는 SBS가 단독으로 포문을 열었다면, 영화관에서는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접 한글자막(CC) 도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젠 영화관에서 즐기자! 한국영화의 한글자막(CC)“ 캠페인을 진행하며, 한글자막을 볼 수 있는 영화관과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이를 통해서 2023년 7월 개봉된 영화 ≪밀수≫에 한글자막이 표기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100년이라는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원래부터 ‘가치봄 영화’라는 이름의 ‘한글자막을 제공하는 한국영화’가 존재했다. 이는 장애인 영화 관람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2005년 장애인 단체와 극장가와 협약을 맺고 진행했던 사항이다. 문제는 이 가치봄 영화의 상영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하지만 시청각 장애를 가지지 않고도 자막을 선호하는 관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뜻밖의 의외의 방향에서 한글자막을 단 한국영화 개봉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전개는 [시대가 세대를 바꾸고, 그 세대가 다시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의 대표적인 흐름이다. 디지털의 시대는 디지털적 소통에 익숙한 세대를 만들고, 이 세대의 부상이 다시 새로운 시대적 형태를 만들어낸 일 말이다.
그렇다면, [자막]을 넘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다고 이야기되는 지금 세대 중에서 우리나라의 2000년대생들도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을까? 아울러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영화의 결말을 미리보는 스포일러 영상에 대해서도 긍정적 반응을 보일까?
물론, (사실 논문을 쓰기 위해 조사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 설문도 동일하게 진행했다^^ 그 결과는 다음 주에 함께 논의를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