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석석...끼익끼익... 밤이 되면 어김없이 들렸다. 챗바퀴가 돌아가고, 코코넛 껍질을 긁으며 곡식통에 들어가 돌돌돌 소리를 내던 친구. 2022년 11월에 우리집에 온 햄이. 작은 새끼 햄스터로 준이의 유치원에서 분양받아 키우던 준이 남동생.
처음에 준이와 나는 햄이에게 맛있는 사료와 간식을 사주고, 장난감으로 집을 꾸며주려고 부던히 애썼다. 준이는 박스를 잘라 붙여 미로를 만들어 그 안에 햄이를 넣고 길 찾아가기 놀이를 한참 했고, 우리집 유튜브 알고리즘은 햄스터 영상을 추천하느라 바빴다. 나도 햄스터 간식을 고르며 '우와~ 이런것도 있네!' 감탄하며 고르고 또 골라 장바구니를 채웠다.
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아픈 적 한번 없이 매일밤 시끄러울 정도로 챗바퀴를 돌렸고, 넣어주는 간식과 사료통은 언제나 금방 비어버렸다. 귀여운 녀석, 나는 우리집 둘째 아들이고, 준이는 내 동생이라고 즐거워했다.
청소는 항상 내 몫이었다. 준이도 거들긴 했지만 이게 정말 거드는 건지, 일을 더 만드는 건지... 가족 중 햄이를 만질 수 있던 사람은 나 뿐이었기에 더 그랬다. (준이는 좋아하면서 만지지 못하고, 신랑은 동물이라면 강아지도 질색!ㅋ) 청소를 해주기 위해 작은 케이지로 옮기면 불안도가 높아진 햄이는 케이지를 박박 긁고 내보내달라는 표현을 했다. 그럴땐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깨끗하게 청소해줄께~ 톱밥을 가득 채우고, 좋아하는 풀을 깔아주고, 터널과 챗바퀴를 깨끗히 닦아 넣어줬다.
매번 그렇게 잘 챙겨주진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반려동물은 항상 엄마 몫이 되는 것 처럼, 준이도 햄이를 들여다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생각이 나면 햄이야~ 한두번 들여다보고, 나와 신랑은 참 오래도 산다며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햄스터는 2~3년 정도 산다고 하길래 이제 햄이도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생각 했는데 그런 생각에 반기를 들듯 햄이는 매일 밤 씩씩거리며 챗바퀴를 돌며 아직 팔팔한 에너지를 자랑했다.
며칠 전, 항상 그랬듯이 밥을 채워줘야지 하며 "햄이야~" 밥그릇을 꺼내 채워주려는데 느낌이 뭔가 쎄하게 다가왔다. 왜 조용하지? 케이지를 통통 두드리면 부스럭 거리며 나왔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항상 잠을 자던 코코넛 은신처를 열어봤는데 햄이는 없었다. 준이를 급히 불렀고, 햄이가 없어! 엇! 이상하다? 어디갔니? 혹시나 해서 옆에 있던 경사로를 들어올리니 한번도 잠을 자지 않았던 그 아래 은신처에서 꽉 웅크린 하얀 털이 보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부드럽던 몸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햄이는 우리집에 온지 2년 2개월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준이와 햄이에게 그동안 고마웠어, 잘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준이는 서운해 했고,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잘 해줬나? 햄이는 내가 잘 해줬다고 생각할까?
아니, 나는 햄스터를 잘 알았나? 햄이에게 필요한게 뭔지 잘 알고 해줬었나?
후회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마음이 뻥~ 구멍이 났다고 해야하나 슬픈 것도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과 시간과 공간, 삶은 나눈다는 것.
신경쓰고 챙기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사실 햄스터 한마리 키우는 것이 별거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햄이가 가고 나니 자꾸 허전한게 여러 생각이 든다. 준이도 서운하다고 한다.
석석석... 밤이 되면 햄이가 은신처를 긁었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괜히 케이지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고 다시한번 '잘가 햄이야'를 말해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내 모습에 신랑은 정말 하나도 안슬퍼보인다고 말한다.
"표현을 안한다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야!"
당분간 허전한 마음이 남겠지.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다음에는 오래사는 거북이를 키워볼까, 나보다 더 오래살지도 몰라 라는 생각으로 준이의 동생, 나의 친구를 다시 만나볼 생각을 한다.
"햄이야, 잘가.
그동안 고마웠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라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