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엽 Jan 23. 2018

1200원의 행복

- 도서관 이야기 

연체되셨네요. 
12일 동안 대출 정지하시던지 아니면,
1,200원을 내셔야 합니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려는데, 

무인 반납기에 

“도서관 관계자에게 문의하세요”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떴습니다. 

알고 보니, 연체가 되었네요.


순간, 

돈을 낼 것인가, 아니면 

12일 동안 책을 빌리지 말까,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 뒤에도 

한 할아버지께서 연체가 되셨는지 

땀을 뻘뻘 흘리시며 

책을 손에 잔뜩 쥐고는 

줄을 서고 계셨습니다. 


제가 무슨 책을 빌렸는지 

제 어깨 너머를 

힐끗 쳐다보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책을 3권을 빌렸고, 

월요일에 반납을 하려고 했으나, 

휴관이라 방문을 하지 않았더랍니다. 


이왕 가는 길에 책만 반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책도 빌려볼 참이었거든요. 


그래서 딱, 4일 지난, 

오늘 목요일에 갔는데, 

총 합쳐서 12일 동안 빌리지 못한다니 

왠지 서운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1,200원을 내자니 

좀 아까운 생각도 들었구요. 


갑자기 친구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재엽! 혹시 반포 근처니? 

커피 한 잔 가능해?” 


저는 갑작스러운 문자에, 

게다가 도서관에서 무지 가까운 곳에 

친한 친구가 있다는 소식에 

얼른 카톡을 보냈습니다. 


“당근이지! 

나 지금 반포도서관이야. 근처에서 볼래?” 


어이없기도 했지만, 

카톡을 보낸지 단 20분 만에 

친구와 저는 

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너 뭐 마실래?”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저는 ‘콜드브루 라떼’를 주문하며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쏠께!” 


친구와 만나고 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도서관 연체료 1,200원은 그렇게 아까우면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콜드 브루 라떼 12,000원, 

10배에 해당하는 비용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을까, 말입니다. 


책 한 권을 사는 것은 

도서관에서 빌려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커피 한 잔 값은 

왜 꼭 '제가 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물론 책 욕심이 많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빌려 읽으니까 좋은 점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반납 일자가 다가오면 

구석에 쌓아두었던 책들도 

대충이라도 읽어서 반납을 하고,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가다보니, 

책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도서관에서 약속을 정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갈 때도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제 고등학교 친구를 

우연하게 만난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조금 살림이 나아져도 

연체로 인한 지출이 아까운건 

왜 일까요?

 

제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저에게 그토록 많은 희망과 기쁨, 

그리고 

삶의 여유를 주었던 

책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이미 ‘화폐의 가치’가 

결코 ‘삶의 무게’와 비례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생각에 도달하자, 

저는 다시 도서관 사서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죄송한데요, 

조금 전에 연체로 반납 처리한 사람인데요, 

연체료를 지금이라도 낼 수 있을까요?”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전산을 몇 번 두드리면서 

여유롭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저도 비록 100원짜리지만, 

12개를 싹싹 긁어모아 지불을 했구요. 


담당자는 

“연체료를 내셨으니, 

오늘부터 대여 가능하십니다.” 

라고 짧지만 분명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깜짝 놀랐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에 반납처리 할 때는 몰랐는데요, 

이 도서관이 

8월부터 대여 가능한 책 권수가 

5권으로 늘어난 것 있죠? 


이건 분명, 

1200원을 내기 위해 다시 데스크를 찾아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었답니다. 


앗싸! 


그래서 저는 당장, 

피터 한트케의 

<페터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허먼 멜빌의 <모비 딕>,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위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을 빌렸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 이래도 1,200원이 아깝다고 이야기할래?” 


정재엽 올림 (j.chung@hanmail.net)

매거진의 이전글 [문학상 이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