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받은 한 통의 편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엘레베이터를 타는 길에
확인하는 우편물은
대부분 그 달 말까지 내야하는
아파트 관리비이며,
신문 대금
(전 아직도 종이 신문을 구독한답니다),
그리고
통신사 요금 고지서입니다.
그나마
통신사 요금이나 신문대금 고지서 같은 것들은
자동이체로 하거나,
이메일 고지서로 받을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매달 얼마를 썼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매달 종이 고지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엔 노란 봉투가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봉투의 겉장에는
낯익은 출판사 이름이 적혀있었고요.
저는 발신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8층을 누르고
바로 봉투를 뜯어서 확인하자,
한 편의 시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로 시작하는 <새해 새 아침>이라는
시였습니다.
반페이지 이상
빼곡이 적혀있는
이 편지는 이렇게 반겨줍니다.
안녕하세요?
2018년 무술년에도
복을 지어 복을 받고
덕을 쌓아
행복한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관심. 기도. 염려에 감사드리오며
새해에도 잘 부탁드리옵니다.
《작은 기쁨》 시집 속에서 발견한 이 시가
새롭게 다가와 나누고 싶었어요.
라며 편지는 저에게 조그맣게 속삭입니다.
엘리베이터는 8층에 도착했지만,
저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 내려갑니다.
제 영적동반자이며 멘토이기도 했던
언니 수녀님이 세상을 떠나니
그 허전한 마음은
말로 다할 수가 없네요.
꿈에라도 보고 싶은데
통 나타나시질 않네요.
어쩌다 오는 전화를 받으면
너무도 반가워서
‘어찌 전화를 다 받니? 신기해라’ 하면서
감격해 하던 언니에게
바쁜 걸 핑계로 덜 친절하게 대했던 일도
후회스럽습니다.
맘씨가 순하고
어질고 주변 사람들을
섬세하게 잘 챙겼던 언니처럼
저도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엄마, 언니, 누나, 이모, 고모가 되어야지-
하고 다짐해보는 새해 첫날입니다.
편지는 읽고 있는데
때르릉, 때르릉- 휴대폰 벨이 울립니다.
둘째 아이가 전화를 하네요.
“아빠 어디야? 아이스크림은 사오고 있어?”
아차. 저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잊고 있었네요.
“집 앞이야. 바로 들어갈게.”
아이스크림을 전달 해준 저는,
편지를 들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이해인 수녀님께 편지 왔어.”
끄덕끄덕.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기에 바쁩니다.
저는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이 시 들어봐,”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소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
- 이해인, <새해 새 아침>
“응. 좋아.”
기계적으로 대답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작년에 제 책이 나왔을 때,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표지에 글까지 써주신 수녀님.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워하시며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쓰라고
다독거려주신 수녀님.
수녀원에서
이 자리가 가장 사진에 잘 나온다며
여기서 찍으라며
‘김치~’라고 말씀해주셨던 수녀님.
저는 그 다정함과 따스함에
올라오는 길에
‘조만간 꼭 뵈어야지’ 라고 다짐했지만,
벌써 소식을 전해드린지 1년이 넘어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수녀님께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그날,
저는 아이들과 함께
수녀님의 <새해 새 아침> 암송대회를 열었습니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내기를 걸었구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정재엽 드림 (j.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