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
얼마 전,
TV에서 본 패럴림픽 개막식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보다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시각장애인 소녀가수 이소정양이
고운 목소리로 무대를 가득 채우더니,
첨단기술을 이용한 ‘파라보트’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또한,
궁중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행하는 환영의식,
이른바 빈례(賓禮)를 재해석한 타악공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수단 입장도 달랐습니다.
원형 트랙을 돌며 입장하는 기존과는 달리,
선수들은
태극기의 파란색과 붉은색을 가르는 동선을 따르듯
운동장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입장했습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나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룹 ‘클론’의 무대는
저는 눈물짓게 만들었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그들의 모습에서
패럴림픽의 의미에 뜻을 더하는 듯 했습니다.
패럴림픽이 진행되는 지금,
승부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 장애인들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열정의 축제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문득,
저는 유투브에서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라장조’를 찾아들었습니다.
언젠가
이 곡을 처음 들려준 제 대학 선배는
이 곡에 대한 감상을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라고.
거대한 오케스트라 전체가
화려한 악상을 펼치는 가운데,
화려한 피아노의 선율이
쉴 새 없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입고리가 살짝 올라간 선배는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리스 라벨의 친구였던
피아니스트 폴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 1887~1961)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의 친형입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큰 부상을 입고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수술이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연주자를 위해
동료 작곡가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라벨은 이 피아노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했고,
그 외에도
브리튼과 슈트라우스,
힌데미트 같은 당대 작곡가들이
비트겐슈타인의 왼손을 위해
여러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장애인이 된 피아니스트는
그들의 헌정된 곡에 자신감을 얻었고,
그 중 라벨의 곡을 가장 즐겨 연주했습니다.
마지막 결승선까지
힘차게 스키 폴대를 저어가는
바이에슬론 신의현 선수의 거친 숨소리도,
개막식 성화 봉송을 했던
서보라미 선수의
터질 듯한 질주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특히,
서보라미 선수는
무용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후천성 신체장애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이 활주하는
그들의 땀방울 속에
전부다 현실을 극복하는
뜨거운 열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질주 속에
웅장하게 펼쳐지는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
오늘 한번 들어보시면 어떠세요?
정재엽 (j.chung@hanmail.net)드림.